독일 남부 디칭겐시에 있는 절삭공구업체 트룸프의 엔지니어들이 기계를 살펴보고 있다.
독일 남부 디칭겐시에 있는 절삭공구업체 트룸프의 엔지니어들이 기계를 살펴보고 있다.
독일 남부 디칭겐시에 있는 절삭공구업체 트룸프(Trumpf)는 산업용 레이저와 공작기계, 의료기기 등을 생산하는 회사다. 세계 절삭·공작기계 시장의 20%를 차지하는 독일의 대표적인 히든 챔피언이다. 1만명의 직원과 26개국 판매법인을 두고 있으며 지난해 전년 대비 15.3% 늘어난 23억유로어치(약 3조3000억원)의 장비를 판매했다.

트룸프는 창업자인 크리스티안 트룸프가 1923년 납 절단기 제조회사를 설립했을 때부터 ‘기술 인력’을 회사의 가장 큰 자산으로 꼽아왔다. 기술 엔지니어들의 임금 수준은 회사에서 가장 높다. 이들의 연봉은 최소 6만유로(약 8800만원)부터 시작해 5만유로(약 7400만원)에서 출발하는 관리직 임원들보다 많다.

獨, 직업훈련·노동시장 연계교육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2년 동안 매출이 40%나 떨어졌을 때도 트룸프는 인력 구조조정을 하지 않았다. 마티어스 카뮐러 트룸프 사장은 “한창 어려울 때는 근로자협의회와 얘기해 회사에서 6개월간 월급의 80%만 지급했고, 나머지는 정부 지원을 받아 버텼다”며 “우수한 기술인력을 내보내지 않아 위기 후 더 큰 성장을 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트룸프는 직원들이 다니고 싶어하는 회사를 만들기 위해 작업환경과 관련한 다양한 아이디어를 시행하고 있다. 직원들에게 근로시간을 유연하게 조정할 수 있는 자율권을 주고, 자기계발에 일정시간 이상을 쓰도록 의무화했다. 이 회사의 정년은 67세다. 라이너 그루나우어 아시아·인도담당 매니저는 “사람과 기술을 우대한 결과 이직률이 3%로 업계 최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고 자랑했다.

아우크스부르크에 있는 140년 역사의 변속기 제조회사 렝크(Renk)도 마찬가지다. 이 회사 관계자는 “특수시장에서 경쟁력을 갖고 있는 만큼 변속기 기술자로서 뭔가를 이뤄보고 싶다는 기술자들은 렝크에서 일하는 데 자부심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독일의 기술인력은 직업교육 훈련과 노동시장을 연계한 교육제도로 다져졌다. 예컨대 트룸프 전체 직원의 6~10%가 현장을 실습하는 학생들이다. 고압력 청소기 분야에서 세계 1위인 독일 케르허(Kaercher)도 빈넨덴에 있는 3000명의 본사 직원 중 150명이 견습생이다.

울리히 슈마허 케르허 홍보담당 부장은 “직업교육생 출신도 자신이 원하면 직장을 다니면서 대학 공부를 할 수 있다”며 “회사 이해력도 높고 새로운 이론을 현장에서 바로 적용해 유능한 인재로 거듭난다”고 말했다.

요른 시글레 프랑크푸르트 상공회의소(IHK) 한국·일본담당 부장은 “독일 정부는 기본적으로 기업을 직접 지원하기보다는 기술인력을 양성하거나 기업과 학교 간 (산학)협력 등 간접적인 방법을 쓰고 있다”고 말했다.

韓, 취업 후 실무교육 따로 받아

한국에서는 대학을 졸업한 사람들이 많지만 취업 후 1~2년간 현장교육을 따로 받아야 할 정도로 기술능력이 취약한 것이 문제다. 지방 중소기업에서는 이런 인력조차 구하기 힘들다. 김태용 컴윈스 부사장은 “최근에는 대기업들의 고졸 채용이 늘어나면서 마이스터고 졸업생들마저 대기업으로 몰리고 있다”며 중소기업 인력난을 토로했다.

연구개발(R&D) 예산사업을 획기적으로 개선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지난해 한국의 R&D 예산은 16조9000억원이었지만 이 중 중소기업 지원비중은 12.4%에 그쳤다. 대부분이 정부출연연구소(38.4%)와 대학(25.4%)으로 갔다. 양봉환 중소기업청 생산기술국장은 “중소기업은 R&D에 필요한 장비와 인력이 모두 부족하다”며 “이 때문에 R&D 예산의 대부분이 연구기관이나 대학으로 가고 있는데, 그 성과가 기업으로 제대로 이전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디칭겐=윤정현/박수진 기자 ps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