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 바랜 '금융허브' 차라리 접어라
지난달 21일 부산 벡스코에서 열린 ‘2013 부산 금융중심지 해양·선박금융 컨벤션’. 최수현 금융감독원장은 “부산이 국제적인 금융중심지로 발돋움하고 있다”며 “싱가포르처럼 해운업과 금융산업을 조화시키면 머지않아 동북아 금융의 커다란 축으로 자리매김할 것”이라고 말했다.

최 원장의 이런 평가와는 달리 부산을 ‘아시아의 금융중심지’라고 부르는 이들은 거의 없다. 금융 공기업 등 9개 기관이 순차적으로 부산으로 내려가기로 했고, 선박금융공사를 부산에 만들겠다는 국회의원들의 법률안만이 국회에 계류돼 있을 뿐이다.

노무현 정부는 2003년 12월 ‘동북아 금융허브 계획’을 발표했다. 2015년까지 한국을 홍콩 및 싱가포르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동북아 3대 금융허브’로 육성하겠다는 로드맵도 내놓았다. 2007년까지 세계 50대 자산운용사를 유치하고, 2010년까지 해외 유수 금융회사의 지역본부를 유치하는 것과 함께 아시아를 대표하는 국내 금융회사를 육성한다는 게 골자였다.

꼭 10년이 지난 지금, 이뤄진 것은 거의 없다. 서울·부산을 금융중심지로 지정하고 한국투자공사(KIC)와 KAIST 금융전문대학원을 설립한 것이 고작이다. 국내에 진출한 외국계 금융회사 점포 수는 2009년 말 148개에서 작년 말 152개로 단 4개 늘어나는 데 그쳤다. 오히려 AIG는 아시아태평양 지역본부를 한국에 설치한다는 계획을 취소했다. 골드만삭스자산운용은 한국에서 철수했다. ING생명과 아비바생명 등도 한국 사업을 접고 있다. 아시아를 대표하는 금융회사는 여전히 없다.

세계경제포럼(WEF)이 작년에 조사한 국가별 금융시장 성숙도 평가에서 한국은 71위에 머물렀다. 홍콩(1위)과 싱가포르(2위)는 고사하고 뉴질랜드(5위)와 호주(8위)에도 한참이나 뒤졌다.

작년 11월 준공된 서울 국제금융센터(IFC)의 입주율도 아직은 낮다. 오피스타워 1동은 99.3% 입주가 이뤄졌지만 2동은 33.6%밖에 차지 않았다. 3동은 임대를 시작하지도 못했다. IFC를 구성하는 최고급 콘래드호텔은 매물로 나왔다.

금융계 고위 관계자는 “외환시장 여건이나 자본시장 발전 정도를 감안할 때 금융허브 계획은 당초부터 무리였다”며 “차라리 포기 선언을 하는 게 낫다”고 말했다.

이상은/박동휘 기자 se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