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관세청이 국내 60여개 수출 대기업에 자유무역협정(FTA) 원산지 증명을 요구했다. 미국과 맺은 FTA 관세 혜택을 받으려면 완제품뿐만 아니라 그 속에 들어 있는 부품이나 원재료도 일정 비율 이상 한국에서 생산(원산지 규정)해야 하는데, 국내 기업이 이 규정을 제대로 지켰는지 미국 정부가 파악에 나선 것이다.

미국 관세청은 원산지 규정을 어긴 것으로 의심이 가는 기업에 사전질의서를 보내는 경우가 많아 한국과 미국 간 대규모 관세 분쟁이 일 가능성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

25일 정부와 무역업계, 관세사업계에 따르면 자동차부품과 전자제품 등을 미국에 수출한 국내 기업 60여곳이 최근 미국 관세청으로부터 ‘FTA 원산지 사후검증을 위한 사전질의서(form 28)’를 받았다. 김영환 FTA무역종합지원센터 단장(산업통상자원부 부이사관)은 “미국 세관의 질의는 비공개로 이뤄지기 때문에 정확한 수치를 파악하긴 힘들지만 60건이 넘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미국에 수출하는 대기업뿐만 아니라 이들 업체에 부품이나 원자재 등을 납품하는 수천곳의 중소기업이 대응 자료 준비에 비상이 걸렸다. 특히 2, 3차 협력업체 가운데는 FTA 원산지 규정과 사후검증 절차 등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곳이 많고, 원산지 전담 인력이 부족한 곳도 수두룩한 실정이다.

미국은 원산지를 증명하지 못하는 국내 기업에 대해서는 관세청 직원을 직접 파견, 해당 회사는 물론 협력업체까지 광범위하게 조사한다. 사후검증 과정에서 원산지 관련 자료를 제출하지 않거나 허위 자료를 제출하면 관세를 추징당할 뿐만 아니라 과태료까지 내야 한다.

산업부와 무역협회 KOTRA 등 관련 기관들이 설립한 FTA무역종합지원센터는 미국의 원산지 사후검증 요구에 대응하기 위해 해당 기업과 협력업체들을 대상으로 상담과 현장교육 등을 전폭 지원하고 있지만 준비가 안 된 곳이 많아 어려움을 겪고 있다.

김 단장은 “원산지 사후검증 절차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기업을 돕기 위해 수도권과 지방 가리지 않고 전문가들을 보내고 있다”며 “궁금한 것이 있으면 1380번으로 전화해 달라”고 말했다.

김낙훈 중기전문기자 nhk@hankyung.com

■ 원산지 사후검증

자유무역협정(FTA)에 따른 관세 혜택을 받으려면 원산지를 증명해야 한다.

원산지 사후검증은 수입품의 원산지가 기준에 맞는지를 수입국가 관세청이 나중에 따져보는 작업이다. 직접 검증과 간접 검증이 있는데 유럽연합(EU)은 간접 검증을 하고 미국 등은 직접 검증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