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일 현오석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경제 권력기관의 수장들과 회동한 것과 관련해 정부의 경제민주화 추진 의지가 약해진 것이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현오석 부총리는 이날 오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렉싱턴호텔에서 노대래 공정거래위원장, 김덕중 국세청장, 백운찬 관세청장과 조찬 회동을 하고 국회의 과도한 경제민주화 입법에 대해 우려를 나타냈다.

현 부총리는 "현재 국회에 제출된 법안 중 과도하게 기업활동을 제약하는 내용이 포함된 경우도 있다"면서 "이런 법안이 마치 정부 정책인 것처럼 오해하지 않도록 수용할 수 없는 부분은 적극 대응하겠다"고 말했다.

공정위나 국세청, 관세청도 법 집행과정에서 기업의 의욕을 저해하지 않도록 각별히 유념해달라고 당부하기까지 했다.

이런 발언은 6월 임시국회의 본격적인 경제민주화 관련 '입법전쟁'을 앞두고 과도한 입법안에 대해서는 정부가 제동을 걸겠다는 의지 천명으로 풀이된다.

또 지하경제 양성화를 빌미로 과도한 세무조사에 나설 경우에는 기업의 사기를 꺾을 수도 있다는 점을 걱정하는 것으로 보인다.

현 부총리가 이들 기관장을 한 자리에 모두 불러모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날 회동은 지난주 중반 현 부총리의 요청으로 이뤄진 것으로 전해졌다.

경제민주화와 지하경제 양성화와 관련해 청와대나 정부가 과도한 과잉규제 양상을 우려하고 나선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 4월 국회에서 일감 몰아주기 법안 추진과 관련해 과잉입법 논란이 일자 박 대통령은 4월 15일 "상임위 차원이기는 하겠지만 (대선) 공약이 아닌 것도 포함돼 있는데 무리한 것은 아닌지 걱정이 된다"고 말하기도 했다.

박 대통령은 17일 수석비서관회의에서도 경제민주화 추진과 관련해 "기업들을 위축시키는 방향으로 과도하게 왜곡되거나 변질돼서는 안 된다"고 당부했다.

재계의 반발도 줄곧 이어져 왔다.

전국경제인연합회 등 경제 5단체는 4월 국회에서 경제민주화 입법이 본격화하자 이를 '무차별적 과잉입법'으로 규정하고 부회장단이 국회를 방문해 신중한 처리를 요청하기도 했다.

국세청의 잇따른 대기업 세무조사도 재계의 거센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지난 4월 25일 대한상의와 김덕중 국세청장의 간담회에서 회장단은 "현재 세무조사를 받는 기업에 대한 조사 강도가 예년과는 다른 것 같다"면서 "경제민주화를 둘러싸고 조성되고 있는 기업 옥죄기 분위기로 기업들이 불안해 한다"고 호소하기도 했다.

6월 국회의 입법논의를 앞두고는 전경련이 지난 13일 신규순환출자 금지 및 계열사 일감 몰아주기 규제를 놓고 공정위의 논리를 공개적으로 조목조목 공박하기도 했다.

일각에서는 18일 경제 권력기관장들과의 회동에서 현 부총리가 기업의 투자의욕 고취를 강조한 만큼 앞으로 경제민주화와 지하경제 양성화 추진에 더욱 제동이 걸리지 않겠느냐는 관측이 나온다.

실제로 지난 4월 박 대통령이 경제민주화 과잉입법을 우려하는 발언을 하자 공정위는 박 대통령의 의중과 재계의 반발을 의식한 듯 총수일가의 일감 몰아주기 관여를 추정하는 '30%룰'을 철회하는 등 경제민주화 입법과 관련해 기존 입장에서 많이 물러났다.

국세청도 18일 국회 업무보고에서 중소법인과 영세납세자의 세무조사를 대폭 축소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역외탈세나 고소득 자영업자의 소득탈루에는 집중 조사를 벌이되 수입금액 100억원 이하 중소법인이나 지방소재·장기성실·일자리창출 법인에는 세무조사 부담을 완화해 불안감을 느끼지 않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18일 회동은 부총리가 경제 권력기관장들을 직접 불러서 기업의 의욕을 꺾는 사례가 발생하지 않도록 각별히 당부했다는 점에서 정부의 의지가 이전보다 더욱 강해진 것으로 보인다.

정부의 정책 무게중심이 경제민주화보다는 경제살리기로 이동했다는 신호를 정치권과 시장에 보냈다는 사실로 비춰볼 때 경제민주화가 사실상 추진동력을 잃은 것 아니냐는 해석도 가능하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6월 국회가 본격적으로 가동되면서 과도한 경제민주화 입법활동이 이뤄지다 보니 기업의 사기 위축을 우려해 현 부총리가 이에 대한 우려의 시그널을 보낸 것"이라며 "공정위원장이나 국세·관세청장도 부총리 생각에 동의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세종연합뉴스) 이지헌 기자 pan@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