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외국인 하면 떠오르는 전형적 이미지는 파란 눈에 금발이다. 검은머리는 외국인과는 반대되는 개념으로 내국인, 즉 한국인을 지칭한다. 한국인인데 외국인으로 가장하고 있는 이들을 가리켜 검은머리 외국인이라고 하는 것은 이런 까닭이다.

금융시장이 개방되기 이전에는 내국인과 외국인을 굳이 구분할 이유가 없었다. 1992년 외국인에게도 시장이 일부 열리자 금융감독 당국은 외국인투자자 등록 제도를 도입하고 비로소 이들을 관리하기 시작했다.

당초에는 종목별 외국인 취득 한도 제한이 있어 이 한도를 넘는지 들여다보는 게 주된 목적이었다. 1998년 통신, 항공 등 일부 업종을 제외하고 외국인 취득한도 제한이 사라진 뒤부터 외국인이 시장에 미치는 영향력을 알아보는 데 더 많이 활용하고 있다.

검은머리 외국인이 출현한 것도 이 즈음으로 추정된다. 외국인 투자가 급격히 증가하고 이들의 영향력이 커지자 일부는 시장의 방향과 반대 방향으로 베팅해 큰돈을 챙겼다. 회사를 잘 아는 내부자가 아니면 대규모로 과감하게 시장에서 예측하는 것과 반대로 투자하기 어렵기 때문에 외국인으로 가장한 내부자일 가능성이 강하게 제기됐다.

금융시장에서 통계에 잡히는 외국인 중 상당수는 검은머리인 것으로 추정되지만 금융당국은 그 규모가 어느 정도인지 가늠조차 못하고 있다. ‘말 많은’ 주식시장에서도 그 실체를 아는 사람이 거의 없을 만큼 은밀하게 활동하고 있다.

이들 검은머리 외국인은 세금 회피, 자금세탁, 차명 거래 등 주로 음성적 거래에 나타나기 때문에 시장을 교란시키는 세력으로 지목되곤 한다.

안재광 기자 ahnj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