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3월 출범한 농협 경제지주회사체제가 사업비효율과 출자 부담에 대한 우려로 원점에서 재검토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해 3월 출범한 농협 경제지주회사체제가 사업비효율과 출자 부담에 대한 우려로 원점에서 재검토되고 있다. /연합뉴스
“기형적이고 혼란스러운 조직이다. 더 늦기 전에 바로잡는 게 낫다.”

농협의 한 관계자는 지금의 지주회사 조직에 대해 이같이 설명했다. 정부가 신·경 분리를 서둘러 완료하려고 한 것이 결국 지금과 같은 파행을 야기했다는 것이 농협 내부의 관측이다. 지난 24일 김수공 농업경제 대표 등 중앙회 임원들이 일괄 사퇴한 데도 이 같은 배경이 작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새로운 농협 개편안이 공론화되기 전에 핵심 인물들이 물러남으로써 ‘정치적 책임’을 지려고 한 것 아니냐는 관측이다.

[농협 '경제지주' 백지화 위기] 지주사 만드는데 세금만 1조3000억…식품·유통사업 자리 못잡아

○20년 산고 끝에 낳은 개혁안

농협 구조 개혁이 논의되기 시작한 것은 1994년이다. 농업인 지원을 위한 경제사업 조직으로 출발한 농협이 가욋일인 신용사업으로 돈을 벌면서 몸집만 키우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되면서다. 신용사업을 떼어내고 경제사업에 집중하자는 ‘신·경 분리’ 주장은 그렇게 나왔다. 하지만 조합원 245만명, 종사 인원 8만명의 거대 조직을 재편하는 일은 쉬운 게 아니었다.

진전이 없던 조직 개편은 이명박정부 초기 국정과제로 선정되면서 급물살을 탔다. 격론 끝에 마련된 방안은 중앙회 밑에 경제사업을 하는 경제지주, 금융사업을 맡는 금융지주를 두는 것이었다. 2011년 농협법이 개정되고 지난해 3월 새로운 농협이 출범했다. 농협사료 등 경제사업을 벌이는 기존 13개 자회사가 우선 경제지주회사로 들어갔다. 현재 중앙회가 소관하는 농협마트와 청과도매 등 판매·유통사업은 2015년까지 지주회사로 옮기도록 돼 있다. 2017년에는 자재와 회원 경제지원 사업 이관까지 마무리짓는 게 목표다.

○김치·두부 사업 접어야 하나

하지만 농협은 새 체제 1년 만에 현실적인 문제로 고심하고 있다. 경제지주 아래 각종 식품과 유통, 자재사업 등이 몰리면서 공정거래법상 자산 5조원 이상의 대기업에 포함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농협 관계자는 “미국과 일본은 공정거래법 규제에서 협동조합을 배제하는데 우리는 소규모 협동조합만 그렇다”며 “2015년 식품·유통사업이 지주회사로 이관되면 당장 기존 사업을 접어야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중소기업 적합업종인 김치와 두부 등 식품사업에는 비상이 걸렸다.

예상을 넘는 비용도 문제다. 중앙회의 출자총액을 제한하고 있는 농협법 제한 탓에 출자 과정에서 법인세 등 1조3000억원가량이 필요한 상황이다. 농림축산식품부 관계자는 “농협법과 조세특례제한법 등을 고쳐 현실적인 문제를 해결하려면 현재의 로드맵을 지키기 어려울 수 있다”고 설명했다.

농협은 사업 실익이 부족하다는 생각도 하고 있다. 정부는 금융과 분리된 경제사업이 적자에 시달릴 것을 감안, 각종 42개 사업에 4조9592억원을 투자하기로 한 상태다. 농협 관계자는 “양곡유통센터, 식품회사 인수 등 대부분 시설 투자에 몰려 있고 운영자금은 부족해 투자계획을 다시 손봐야 할 상황”이라고 말했다.

○중앙회 권력 더 커질 듯

농협 측은 어차피 현재 지주회사가 상법상 지주회사로서 온전치 않다는 생각이다. 협동조합의 특수성을 감안해 법을 만들다 보니 중앙회의 권한과 지주회사의 권한이 겹치는 등 사업의 독립성을 보장할 수 없다는 것이다. 경제적 실익마저 부족한 만큼 지주회사를 경제사업연합회 방식의 특수목적법인으로 전환하는 게 유리하다고 보고 있다. 또는 아예 중앙회 안에 사업연합회를 존치시키는 방안도 유력하게 검토하고 있다. 농협 관계자는 “중앙회와 연합회의 기능이 중복되기 때문에 조직을 따로 만들 필요가 없어 보인다”며 “이 경우 금융만 중앙회에서 분리하는 셈”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중앙회의 과도한 힘을 빼고 경제사업의 독립성을 확보하자는 애초 개혁 취지에서 후퇴한다는 비판도 예상된다. 농촌경제연구원의 한 연구위원은 “키위로 유명한 뉴질랜드의 ‘제스프리’는 협동조합과 주식회사가 공존하는데 농협도 지주회사를 배제할 필요가 없다”며 “중앙회가 결국 기득권을 놓지 않으려는 것 아니냐”고 꼬집었다.

김유미 기자 warmfron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