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 3년간 6조원 규모의 ‘성장사다리펀드’가 민관 합동으로 조성돼 창업 및 혁신기업에 투자된다. 6조원 가운데 1조8500억원을 분담하는 정책금융기관은 5000억원을 후순위로 펀드에 넣어 손실이 발생하면 먼저 떠안기로 했다.

신제윤 금융위원장은 22일 대전 테크노파크와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을 방문해 창업 현장을 둘러본 뒤 이 같은 내용의 ‘성장사다리펀드 조성 및 운용계획’을 발표했다. 첫해인 올해 정책금융기관이 6000억원, 연기금 등 민간이 1조4000억원을 각각 투자해 2조원 규모 펀드를 만들기로 했다.

[성장사다리펀드] 민·관 '성장사다리펀드' 6조 조성…벤처 '죽음의 계곡' 없앤다

○11개 펀드 적기에 자금 공급

성장사다리펀드는 모(母)펀드와 11개의 자(子)펀드로 구성된다. 이를 통해 창업·혁신기업이 ‘창업→성장→회수’ 등 3단계 성장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맞닥뜨리는 ‘(자금의) 죽음의 계곡’을 벗어날 수 있도록 자금을 맞춤형으로 지원한다. 단계별로 3~4개씩 조성되는 펀드로 창업·혁신기업이 겪는 돈가뭄을 적기에 해결해 주겠다는 취지다.

창업단계에서는 창업기업과 엔젤투자자, 벤처캐피털의 자금 수요를 통합적으로 장기간 제공하는 스타트업 펀드, 엔젤투자자와 매칭펀드 형태로 돈을 대는 ‘엔젤 공동투자 펀드’, 다수의 소액투자자에게 돈을 모아 기업에 자금을 대는 ‘크라우드펀딩 공동투자 펀드’ 등이 만들어진다. 또 초기에 실패하는 기업의 잔여 자산을 인수해 재기를 돕는 ‘창업자산 활용 펀드(초기 실패기업 M&A펀드)’도 구성한다.

정부는 특히 성장단계 기업 지원을 위한 펀드에 중점을 뒀다. 인수합병(M&A)으로 큰돈을 버는 미국 벤처기업들의 성공사례를 국내에서도 만들어 내겠다는 구상이다. 페이스북이 모바일 사진공유 프로그램 개발회사인 인스타그램을 10억달러(약 1조1000억원)에 인수하고, 야후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업체 텀블러를 11억달러(약 1조2000억원)에 사들인 게 대표적인 사례다. M&A 시장이 제대로 형성되면 창업 기업이 좋은 기술을 갖고도 사업화에 실패하는 사례가 줄어들 것이라는 판단에서다.

이와 함께 중소기업들이 회사채를 발행하거나 매출채권·특허·상표권 등을 유동화해 돈을 마련하기 쉽도록 구조화금융, 자산기반 금융 펀드도 조성된다. 창업자와 투자자가 기업 투자자금을 회수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기 위한 ‘세컨더리 펀드’도 포함돼 있다.

○‘정책자금+민간자금’ 매칭

성장사다리펀드의 가장 큰 특징은 ‘실패할 경우 정책금융기관이 손실을 먼저 부담하도록’ 했다는 점이다. 정책금융기관은 3년간 민관이 함께 조성할 6조원 중 5000억원을 후순위로 투입하기로 했다. 첫해만 해도 정책금융공사와 산업은행 기업은행 청년창업재단이 모두 6000억원을 펀드 재원으로 넣게 되는데, 이 중 1500억원은 후순위 투자자로 참여한다.

이렇게 되면 펀드에 돈을 투자하는 민간 투자자들은 실패하더라도 정책금융기관이 먼저 손실을 볼 테니 부담을 훨씬 덜 느끼게 된다는 게 정부의 생각이다. 예컨대 펀드가 총 100억원을 여러 벤처기업에 나눠 투자했다가 일부 기업의 실패로 20억원(20%) 손실을 본다고 가정하자. 이 펀드에 정책금융기관이 10% 손실을 우선부담(후순위 투자)키로 했다면, 나머지 민간 투자자들은 총 20% 손실 가운데 절반만 부담하면 된다.

정책금융기관으로서도 감당키 어려운 것은 아니다. 김용범 금융위 금융정책국장은 “후순위 투자 규모가 1500억원으로 제한돼 있어 손실이 무제한 커지는 것은 아니다”고 설명했다.

류시훈/이상은 기자 bad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