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8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인터컨티넨털호텔에서 열린 미 상공회의소 주최 오찬에서 참석자들과 건배하고 있다. 박 대통령 오른쪽은 폴 제이컵스 한미재계회의 위원장, 왼쪽은 스티브 반 안델 미국 상의 이사회 의장. 연합뉴스
박근혜 대통령이 8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인터컨티넨털호텔에서 열린 미 상공회의소 주최 오찬에서 참석자들과 건배하고 있다. 박 대통령 오른쪽은 폴 제이컵스 한미재계회의 위원장, 왼쪽은 스티브 반 안델 미국 상의 이사회 의장. 연합뉴스
한국에서 연간 150만대의 자동차를 생산하는 미국 제너럴모터스(GM)의 댄 애커슨 회장이 한국 투자의 걸림돌로 ‘엔저 현상’과 ‘통상임금 문제’ 두 가지를 공개적으로 지적했다. 8일(현지시간) 미국을 방문 중인 박근혜 대통령과 외국인 투자자들 앞에서다.

엔저와 통상임금 문제는 국내 기업들에 최대 현안으로 등장한 이슈다. 하지만 이날 애커슨 회장의 발언은 이 두 문제가 국내 기업뿐 아니라 한국에 투자하는 다국적 기업에도 큰 부담요인이 되고 있다는 점을 공식적으로 제기한 것이다. 애커슨 회장은 지난 4월 미 CNN 인터뷰에서 한국 투자계획을 철회할 수도 있다는 발언을 해 국내 금융시장에 불안을 불러일으켰다. 때문에 이날 미 상공회의소가 박 대통령을 초청해 워싱턴에서 개최한 라운드테이블 행사에 그가 모습을 드러낸 것 자체가 큰 관심을 끌었다.

◆통상임금 문제 제기한 GM 회장

박 대통령이 먼저 말을 걸었다. “GM 회장이 북한 문제 때문에 철수할 수도 있다는 소문이 있었는데, 이 자리에 오신 것을 보니 철수가 아니라 투자를 더 확대하려고 오신 것이 맞겠죠”라고 물은 것이다. 그러자 애커슨 회장은 “두 가지 문제만 해결되면 절대 한국을 포기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엔저와 통상임금 문제를 지목했다.

배석한 조원동 청와대 경제수석은 “먼저 GM이 엔저 문제를 걱정하는 이유는 세계 생산 물량의 4분의 1을 한국에서 생산하고, 그중 85%를 수출하기 때문”이라며 “엔저로 인해 피해를 본다면 오히려 현대차나 기아차보다 더 많이 볼 수 있는 기업”이라고 설명했다.

조 수석은 하지만 “엔저 현상은 한국 정부가 어떻게 해볼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며 “GM이 진정으로 우려하고 있는 것은 통상임금 문제”라고 전했다. GM 노조는 이미 각종 수당의 산정 기준이 되는 통상임금에 상여금 등을 포함해달라고 법원에 소송을 제기했고, 1심에서 승소했다. 회사 측은 이에 불복해 항소했고 현재 대법원에 올라가 있다.

◆“노사정위 통해 추진할 예정”

조 수석은 “노동계 주장대로 통상임금 문제가 정리되면 기업들의 비용 부담이 크게 늘어나 당장 우리 수출품 경쟁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이는 GM뿐 아니라 우리 기업에도 큰 타격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조 수석은 통상임금에 대한 법원 결정이 번복되지 않으면 GM이 80억달러를 투자하지 않을 가능성에 대해 “그렇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박 대통령이 애커슨 회장에게 “통상임금 문제는 GM 혼자만의 문제가 아니고 한국 경제 전체가 겪고 있는 문제”라며 “확실히 풀어나가겠다”고 한 것도 대통령 스스로 이 같은 문제의 심각함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라고 조 수석은 설명했다. 박 대통령은 이날 아침 재계 총수들과의 워싱턴 회동에서도 한 중견기업 대표가 통상임금 문제를 지적하자 “잘 알고 있다. 문제를 풀겠다”고 답했다. 조 수석은 “앞으로 정부 차원에서 통상임금 문제 해결 방안을 찾겠다”며 “필요할 경우 노사정위원회를 통해 합의를 이끌어내는 방안도 추진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라운드테이블 행사에 참석한 문진국 한국노총위원장도 GM 회장의 통상임금 문제 지적을 듣고 “기업의 사회적 책임은 노동 기본권 존중에서 시작된다”며 “마찬가지로 기업이 사회적 책임을 다하고 그런 기업에 대해 협력하는 것도 노조의 본분”이라고 말했다. 조 수석은 “문 위원장의 이날 행사 참석과 발언은 노사 간의 상생으로 이 문제를 풀어나가겠다는 의지를 외국인 투자자들 앞에서 보여준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워싱턴=정종태 기자 jtch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