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재정위기는 인류가 겪었던 수많은 경제위기 중 하나일 뿐이다. 극복할 수 있다.”(도널드 존스턴 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사무총장)

“유럽이 구조 개혁을 시작했지만, 너무 느리고 제대로 될지도 의문이다. 장기 불황을 피하기 어렵다.”(니콜라스 베론 브뤼겔 선임연구원)

그리스의 구제금융 신청으로 유럽 재정위기가 시작된 지 3년이 지났다. 유럽중앙은행(ECB)과 유럽 각국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위기는 현재 진행형이다. 물론 지난해 기정사실로 여겨졌던 그렉시트(grexit·그리스의 유로존 탈퇴) 같은 최악의 사건도 일어나지 않았다. 유럽 경제의 앞날은 어떻게 될까. 한국경제신문은 유럽 최고의 경제전문가로 꼽히는 존스턴 전 OECD 사무총장과 벨기에 브뤼셀에 있는 유럽 최대 경제 싱크탱크인 브뤼겔의 베론 선임연구원에게 의견을 들었다. 긍정론과 부정론으로 팽팽히 맞선 두 전문가와의 이메일 인터뷰를 대담 형식으로 꾸몄다.

▷유럽 재정위기가 발생한 지 3년이 지났다. 수많은 재정·통화정책을 시행했지만 위기는 끝나지 않았다.

[유럽 재정위기 3년] "구조개혁 더뎌 장기불황 불가피" vs "수많은 위기중 하나일 뿐"
존스턴
=절망할 필요는 없다. 유로는 실패하지 않을 것이고, 어느 나라도 유로존(유로화 사용 17개국)에서 나가지 않을 것이다. 위기는 유럽연합(EU)의 구조적 문제들을 노출시켰다. 앞으로 그 문제들을 극복해 나갈 것이다.

베론=위기는 오랜 기간 계속되고 있다. 사실 유럽 위기는 2007년 스페인 등의 은행이 부실해지면서 시작된 것이다. 그간 유럽 은행들은 신뢰를 잃었고, 정치 지도자들은 여전히 EU를 이끌 올바른 방향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위기가 그리스 등 주변국에서 프랑스를 비롯한 중심 국가로 번지는 양상이다.

존스턴=위기가 전염된 것은 분명하다. ECB와 각국 정부는 위기를 진화하기 위해 기업에 유동성을 추가로 투입해 일자리를 만들어야 한다. 장기적으로는 생산성 향상을 위한 노력도 필요하다. 하지만 지나치게 불안해할 필요는 없다. 지난 1월 스페인의 성공적인 국채 발행이 증거다. 투자자들의 신뢰가 살아나고 있다.

베론=원래 유럽 전체의 문제였다. 나를 비롯한 많은 학자들은 그리스뿐 아니라 이탈리아와 스페인, 프랑스 등이 어려움에 처할 것이라는 걸 예상하고 있었다.

▷독일 주도의 긴축 정책이 실패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유럽 재정위기 3년] "구조개혁 더뎌 장기불황 불가피" vs "수많은 위기중 하나일 뿐"
존스턴
=독일은 자국민들을 설득하고 돈을 풀어야 한다. 독일 국민들은 자신들이 피해만 본다고 생각하지만 얻은 것도 많다. 독일의 실업률은 5% 정도이고, 엄청난 경상수지 흑자를 기록하고 있다. 또 아주 낮은 국채 금리를 유지하고 있다. 유로존이 없었으면 가능했겠는가.

베론=유럽의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각국이 협력해야 한다. 그런데 협력이 전혀 안 되고 있다. 올해는 9월에 있을 독일 총선 때문에 모든 정치적 이슈들이 뒤로 밀려 있다. 독일의 입지는 EU 내에서 점점 더 커지고 있다. 하지만 독일이 요구하는 긴축정책은 더 이상 다른 국가들이 받아들이기 어렵다.

▷2008년부터 위기를 겪은 미국은 어떤가.

존스턴=미국이 성공했다고 말할 수 없다. 경기를 부양하기 위해 15조달러가 넘는 국가부채를 쌓아야만 했다. 이 정도 부채를 지속 가능한 수준으로 줄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미국은 증세가 필수적이다. 하지만 정치적 갈등 때문에 증세를 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베론=미국은 2009년에 위기를 한 번 극복하고 넘어갔다. 하지만 유럽은 비슷한 위기를 겪었는데도 여전히 헤매고 있다. 이는 미국의 정치·의사결정 시스템이 유럽보다 훨씬 낫기 때문이다.

▷이탈리아와 포르투갈이 ‘긴축 포기’를 선언하면서 ECB의 단기 국채 무제한 매입(OMT) 조치가 무용지물이 됐다.

존스턴=OMT 말고도 많은 방안들이 있다. ECB는 추가적인 양적완화를 할 수 있다.

베론=그렇지 않다. ECB가 추가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다. EU 각국 간 정치적 협상이 전혀 이뤄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유럽의 좋은 인재들이 독일에만 몰려간다는 지적이 있다.

존스턴=심각한 문제다. 현대사회에서 인재는 경제 성장을 위해 가장 중요한 요소다. 독일을 제외한 많은 국가가 성장동력을 잃고 있다.

베론=독일을 제외한 다른 국가에는 힘든 일이겠지만, 필요한 과정이다. 인재의 이동은 실업 문제를 해결하고, 유럽 경제의 엔진인 독일의 성장률을 높여준다.

▷당신이라면 유로화에 투자할 것인가.

존스턴=물론이다. 나는 유로존이 붕괴되지 않고, 유로화가 오른다는 데 돈을 걸 수 있다. 유로는 각종 부정적인 전망에도 달러와 1 대 1 수준까지는 떨어지지 않는다. 많은 투자 거물과 헤지펀드들이 나와 생각을 공유하고 있다.

베론=유로화가 EU의 경제 상황과 반대로 움직이긴 한다. 그렇다고 해도 투자할 것 같지는 않다.

▷위기의 원인을 ‘게으른 남유럽’이라고 보나, 아니면 ‘인색한 북유럽’이라고 보는가.

존스턴=둘 다 아니다. 2011년 OECD 통계에 따르면 그리스인들은 1년에 평균 2032시간 일한다. 독일보다 많이 일한다. 게으름이 문제가 아니다. 노동생산성과 제조업 경쟁력 등 경제 구조의 문제다.

베론=누굴 비난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이 문제를 놓고 3년이나 싸웠지만 아무 결론도 없지 않은가.

▷유럽 위기의 끝은 무엇일까. ‘일본식 장기 불황’인가.

존스턴=세계에는 위기를 잘 극복해낸 국가들의 사례가 많이 있다. 한국이 대표적이다.

베론=유럽이 구조 개혁을 시작하긴 했지만, 너무 느리고 불확실한 게 많다. ‘일본식’은 아니겠지만 장기 불황을 피하긴 어려울 것이다.

남윤선 기자 inkling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