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이 15일 항소심 재판을 받기 위해 구급침대에 누워 서울 서초동 서울고등법으로 들어가고 있다.  연합뉴스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이 15일 항소심 재판을 받기 위해 구급침대에 누워 서울 서초동 서울고등법으로 들어가고 있다. 연합뉴스
총수 공백 '막막한 한화'…투자 올스톱
김승연 회장이 15일 항소심에서 형량이 1년 줄긴 했지만 징역 3년형을 선고받으면서 한화그룹의 총수 부재 상태가 장기화할 수밖에 없게 됐다. 한화는 최금암 경영기획실장 중심의 비상경영 체제를 유지할 것으로 전해졌다. 그룹 관계자는 “그룹의 미래가 걸린 중대한 경영 판단들이 올스톱된 상태로 위기를 어떻게 헤쳐가야 할지 정말 막막하다”고 하소연했다.

2심에서도 김 회장에게 집행유예 없는 실형이 선고되자 한화 사옥은 깊은 침묵에 휩싸였다. 회사 측은 “재판부가 구조조정 과정에서 김 회장이 개인적 이득을 취하지 않았다고 인정한 점은 고무적이지만, 배임 혐의 중 일부를 유죄로 본 것은 유감”이라고 공식 입장을 내놨다. 한화는 판결문을 면밀히 검토해 대법원 상고 여부를 검토할 방침이다.

작년 8월 김 회장 구속 직후 시작된 한화의 비상경영 체제는 앞으로도 상당기간 지속될 수밖에 없어 보인다. 정상적인 수형생활이 불가능할 만큼 김 회장의 건강이 좋지 않은 데다 항소심 법원이 비록 구속집행정지를 유지했지만 회사 업무 복귀는 법적으로나 사회통념상으로나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현재 한화는 그룹 경영기획실장인 최금암 부사장이 재무, 전략, 인력, 법무 등 각 팀장들과 그룹 현안을 조율하고 있다. 각 계열사들은 자율경영 체제를 가동 중이다.

한화 관계자는 “신은철 부회장이 임원 중 가장 선임이지만 경영환경이 워낙 불투명해 최 부사장이 이끄는 비상체제를 바꿀 만한 형편이 안 된다”며 “현재 체제를 그대로 끌고 가는 것 말고는 다른 대안이 없다”고 말했다. 그는 “아무래도 그룹 전체의 위기대응 속도와 능력 면에서 뒤처질 수밖에 없고 그만큼 내부적 위기감도 고조되고 있다”고 전했다.

김 회장 구속 이후 한화는 대규모 자금이 들어가는 투자 계획은 전면 중단한 상태다. 비상경영 체제가 지속될 경우 그룹의 미래가 걸린 사업에 대한 결정이 모두 중단될 처지여서 위기감이 어느 때보다 크다. 지난해 5월 9조4000억원 규모의 이라크 신도시 프로젝트 수주와 8월 독일 태양광업체 큐셀 인수 이후 신사업 소식이 전혀 없다.

이미 4월 중순이지만 올해 투자 계획도 확정하지 못했다. 이라크에선 발전소와 정유시설 등에 대한 추가 수주 작업이 멈췄고, 독일 주정부와 연구·개발(R&D) 지원책을 논의하려던 한화큐셀의 계획도 유보됐다. 태양광을 신성장 동력으로 키우기 위해 중국 등 해외로 분주하게 드나들었던 김 회장의 장남 김동관 한화솔라원 기획실장은 요즘 국내에만 머물고 있다.

올해 1월 비정규직 2043명을 정규직으로 일괄 전환하고, 지난달엔 36개의 점포를 가진 계열사 커피체인 빈스앤베리즈를 사회적 기업으로 탈바꿈시키는 등 동반 성장에 발 벗고 나섰지만 법원의 선처를 이끌어 내지 못했다.

박해영/윤정현 기자 bon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