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밀라노 가구박람회에 설치된 삼성전자 전시관 앞 모습. ‘너무 멋진 세상(What a wonderful world)’을 주제로 유명 인테리어 작가 프랑수아 콘피노와 함께 꾸몄다.
올해 밀라노 가구박람회에 설치된 삼성전자 전시관 앞 모습. ‘너무 멋진 세상(What a wonderful world)’을 주제로 유명 인테리어 작가 프랑수아 콘피노와 함께 꾸몄다.

‘패션, 디자인의 중심지’ 이탈리아 밀라노 비아토르토나 27번지 수페르스튜디오에 설치된 삼성전자 전시관.


9일 오전 9시30분(현지시간) 제52회 밀라노 가구박람회(Salone Internazionale del Mobile Milan) 개막과 함께 관람객이 쏟아져 들어왔다. 검은 커튼을 제치고 들어서자 암흑 속에 양옆으로 꿈을 꾸는 듯 길고 커다란 스크린이 펼쳐졌다. 갤럭시S3를 스크린 내 빨간 점에 댄 뒤 흔들었다. 스크린 안의 나무가 순식간에 자라나더니 꽃이 피고 나비들이 몰려들었다. 스마트폰을 몇 바퀴 돌리자 비바람이 불고 토네이도가 몰아쳤다. 현지에서 건축디자인을 하는 김지수 건축가(스튜디오디아키텍추라 아가지 대표)는 “작년에도 삼성전자관에 엄청난 인파가 몰렸는데 오늘은 더 많은 것 같다”고 했다.


삼성전자는 2011년부터 세계 최대의 디자인 행사인 밀라노 가구박람회에 참여하고 있다. 1961년 시작된 이 행사는 명품 가구뿐만 아니라 패션 자동차 정보기술(IT) 등 디자인 관련 글로벌 기업들이 대거 참여한다. 최신 디자인 트렌드를 파악할 수 있어 매년 수십만명의 디자이너가 전 세계에서 몰려든다. 올해는 8일 오프닝 행사를 시작으로 9일부터 14일까지 밀라노 시내 전역에서 열린다.

◆남들 원가 절감할 때 “디자인에 혼을 담아라”

이건희 회장이 2003년 8월 선진제품비교전시회에서 삼성 노트북 디자인을 자세히 관찰하고 있다.
이건희 회장이 2003년 8월 선진제품비교전시회에서 삼성 노트북 디자인을 자세히 관찰하고 있다.
2005년 4월 이건희 삼성 회장은 밀라노 가구박람회 현장을 찾았다. 삼성은 박람회에 출품하지 않고 계열사별로 정보 수집만 하던 시기였다. 최지성 당시 삼성전자 사장 등 삼성 최고경영진은 이 회장의 지시로 며칠간 전시회장을 샅샅이 둘러보며 최신 트렌드를 체험했다.

전시회 마지막 날인 4월14일 이 회장은 이들을 불러모아 디자인 전략회의를 했다. 이 자리에서 그는 “삼성 제품의 디자인 경쟁력은 아직 1.5류다. 제품이 소비자 마음을 사로잡는 시간은 평균 0.6초인데 이 짧은 순간에 고객을 붙잡지 못하면 승리할 수 없다”며 ‘제2 디자인혁명’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신경영으로 바뀐 삼성 유전자 덕분에 뚜렷한 경쟁 우위를 보이는 분야가 디자인이다. 이 회장이 “앞으로 세상에서 디자인이 제일 중요해진다. 성능이고 질이고 이제 생산기술이 다 비슷해진다. 개성을 어떻게 하느냐, 디자인을 어떻게 하느냐(가 관건이다)”라고 한 게 1993년 6월 프랑크푸르트 신경영 선언 때다.

신경영을 통해 품질경영이 자리잡기 시작하자 이 회장은 제품에 ‘삼성의 혼’을 담을 것을 주문했다. 1996년 “다가올 21세기는 문화의 시대다. 디자인은 기업의 철학과 문화를 담아야 한다”고 디자인혁명을 주창한 것이다. 삼성 고위 임원은 “1990년대는 기업들이 원가 절감과 품질에 매달릴 때였다”며 “이때 디자인을 경영 전면에 내세운 건 파격이었다”고 회고했다.

이후 투자가 집중됐다. 1996년 삼성디자인학교(SADI)가 세워지고 2001년 삼성전자엔 최고경영자(CEO) 직속의 디자인경영센터가 설립됐다. 현재 디자인경영센터엔 1200여명의 디자이너가 일하고 있으며 런던 상하이 도쿄 로스앤젤레스(LA) 밀라노 뉴델리 등에 디자인센터를 두고 있다.

삼성은 ‘선디자인·후개발’ 체제여서 상품 개발 과정에서 디자인 부서의 발언권이 크다. 안용일 디자인경영센터 상무(선행디자인팀)는 “대부분의 기업은 디자인 조직이 개발부서에 속해 있지만 우리는 CEO 산하 조직으로 개발 마케팅 부서를 조율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고 설명했다.

[신경영 20년…삼성 DNA를 바꾸다] 기술의 삼성이라고? 디자인도 본토에서 통했다

◆삼성 디자인경영 강화

디자인경영의 성과는 서서히, 그러나 확실히 나타나고 있다.

2006년 3월 삼성전자가 내놓은 ‘보르도 TV’는 나오자마자 화제가 됐다. ‘TV는 네모여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깨고 와인잔을 형상화한 혁신적 디자인을 적용해서다. 보르도는 출시 1년4개월 만에 500만대나 팔리는 글로벌 히트상품이 됐고, 이를 발판으로 삼성전자는 일본 소니를 넘어 글로벌 TV 1위로 도약했다. 7년 연속 글로벌 TV 시장 1위의 신화가 디자인에서 출발한 것이다.

‘갤럭시노트’도 디자인부서 주도하에 더 큰 화면을 원하는 수요를 파악함으로써 탄생한 제품이다. 최근 공개된 갤럭시S4, 거대한 프레임 안에 화면이 떠 있는 듯한 ‘타임리스 갤러리 디자인’의 85인치 울트라HD TV도 마찬가지다.

삼성전자는 최근 세계 3대 디자인상인 독일의 ‘레드닷’ ‘iF’, 미국의 ‘IDEA’를 휩쓸었다. IDEA에서 최근 5년간 누적 수상 1위를 차지했고 iF도 마찬가지다. 최근 3년간 수상 성적을 포인트(금상 100점, 부문 수상 20점 등)로 환산해 순위를 정하는 ‘iF 디자인 어워즈’ 주최측은 삼성전자(3080점)가 2위인 소니(2380점)와 큰 점수 차로 1위를 기록했다고 설명했다. 지멘스 필립스 애플이 뒤를 이으며 BMW는 13위, 메르세데스벤츠가 19위다.

삼성 디자인은 밀라노에서도 통한다. 작년 ‘미래의 삶’을 주제로 꾸몄던 전시관은 전시기간 내내 화제가 됐다. 건축예술 거장 이탈로 로타(Italo Rota)와 협업해 태블릿을 활용한 가상현실 체험, 투명 디스플레이로 펼쳐지는 미래 생활모습 등을 구현, ‘꼭 가봐야 할 곳’으로 꼽혔다. 올해는 ‘너무 멋진 세상(What a wonderful world)’을 주제로 유명 인테리어 작가인 프랑수아 콘피노와 함께 꾸몄다.

밀라노=김현석 기자 reali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