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남 사장 "우리 기술 빼갈까 오히려 걱정이다"
LG디스플레이 "뭐 묻은 개가 겨 묻은 개 나무라는 꼴"

삼성 주요 계열사 사장들이 한 자리에 모이는 수요사장단회의가 열린 10일 아침. 초청강사의 강연이 끝난 뒤 김기남 삼성디스플레이 사장이 갑자기 앞으로 나왔다.

김 사장은 사장단을 향해 "언론보도를 보고 놀랐을 것 같아 말씀드리러 나왔다" 며 "일부에서 보도된 의혹은 사실과 다르다"고 말을 꺼냈다.

<김기남 삼성디스플레이 사장>
<김기남 삼성디스플레이 사장>
삼성디스플레이가 LG디스플레이의 OLED 기술을 빼돌린 혐의로 경찰의 수사선상에 오른 것에 대한 입장 표명이었다.

전날 서울지방경찰청 국제범죄수사대는 LG디스플레이의 협력사 2곳이 경쟁사로 OLED 기술을 빼돌린 혐의와 관련해 경쟁사인 삼성디스플레이의 아산, 천안, 기흥 등 사업장 4곳에 대해 압수수색을 진행했다.

김 사장은 "잘 아는 것처럼 삼성디스플레이는 전 세계 OLED 시장에서 98%의 점유율을 가지고 있다" 며 "오히려 우리 기출이 빠져나갈 까 걱정하고 있지, 다른 것을 걱정할 여력이 없다"고 강조했다.

또 "삼성디스플레이가 쓰고 있는 기술과 설비는 언론에 보도된 것과 전혀 다른 것" 이라며 "수사과정을 통해 우리의 무혐의가 명백히 밝혀질 것"이라고 말했다.

사장단회의에서 각 회사의 사안에 대해 공식적으로 입장을 밝히는 건 이례적인 일. 이날 모인 사장단도 김 사장의 이같은 발언에 대해 전혀 예측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 관계자는 "사장단이 모인 자리에서 개별 회사의 사안에 대해 설명하는 건 흔치 않은 일" 이라며 "그만큼 해당 사안에 대해 자신감을 가지고 있다는 얘기 아니겠느냐"고 주장했다.

◆ 삼성-LG OLED 싸움, 화해모드서 재점화 조짐

LG디스플레이는 경찰의 압수수색으로 삼성디스플레이의 혐의가 어느 정도 드러난 것 아니냐며 비난의 날을 세웠다.

LG디스플레이는 김 사장 발언이 언론에 보도된 직후 입장자료를 내고 "이번 압수수색은 삼성디스플레이가 협력사를 통해 OLED 패널 기술을 빼냈다는 상당한 증거를 확보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혐의가 사실이라면 업계의 자연스러운 인력 이동을 문제 삼아 우리를 조직적인 범죄집단으로 호도해 온 경쟁사 행태는 '뭐 묻은 개가 겨 묻은 개를 나무랐던' 꼴이 될 것"이라고 비난했다.

"LG디스플레이의 OLED 기술 우수성과 선진성을 경쟁사가 자인한 셈" 이라며 "앞으로 수사과정에서 정확한 사실 규명이 이뤄지기를 기대한다"고도 말했다.

OLED 기술 유출을 둘러싼 두 회사 간 갈등은 지난 해 7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검찰은 삼성디스플레이의 OLED 패널 기술을 유출한 혐의로 LG디스플레이 임직원과 삼성 전·현직 연구원 등 11명을 불구속 기소했다.

삼성디스플레이는 손해배상 책임을 묻겠다며 LG디스플레이를 겨냥해 소송을 제기했다. LG디스플레이 역시 맞소송을 제기해 분쟁은 본격 소송전으로 이어졌다. 두 회사가 각각 2건씩 총 4건의 특허관련 소송을 제기했다.

치열하게 벌어지던 싸움은 올 1월 말 정부가 중재에 나서면서 급반전됐다. 서로 각 1건씩의 소송을 자진 취하하며 소송에서 대화와 협상 모드로 바뀐 것. 최근까지 남은 2건의 소송에 대해서도 "서로 잘 해 보자"며 실무진을 꾸려 협상을 진행해왔지만 이번 경찰의 압수수색으로 사태는 새 국면을 맞게 됐다.

김 사장은 사장단회의를 마치고 돌아가는 길에 기자들과 만나 'LG디스플레이와의 관계가 원점으로 돌아가는 것이냐'는 질문에 "꼭 그런건 아니다"고 여운을 남겼다. LG디스플레이 관계자 역시 "경찰 수사와 협상은 별개"라고 말했다.

업계에선 이번 수사가 두 회사의 협상에 변수가 될 순 있어도 기본 입장에 큰 변화가 없다면 협상 자체가 무효화 되진 않을 것이라고 보고 있다.

OLED는 액정표시장치(LCD)와는 달리 스스로 빛을 내는 유기물질로 반응 속도가 1000배 이상 빠르고 선명한 화질을 구현한다. 별도의 광원이 필요 없어 패널 두께를 얇게 만들 수 있고 전력 효율도 뛰어나 '꿈의 디스플레이'로 불린다.

스마트폰 등에 들어가는 소형 OLED 패널은 삼성디스플레이의 독무대다. 55인치 이상 대형 OLED 패널은 삼성디스플레이와 LG디스플레이가 양산 경쟁을 벌이고 있다.

한경닷컴 권민경 기자 kyo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