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중은행 28일 영업 재개 맞춰 적용…4~7일 단기 시행할 듯
러시아 예금주 '집단소송' 검토…키프로스인들 수도서 항의시위

키프로스 정부가 예금 대량 인출(뱅크런)을 막기 위해 국외 송금 중지 등을 내용으로 한 자본통제 방안을 마련했다.

유럽연합(EU) 회원국에서 자본 통제가 시행되기는 EU 창설 이래 처음 있는 일이다.

27일(이하 현지시간) 키프로스 국영 뉴스통신사와 외국 언론들에 따르면 무역 대금 결제를 제외한 일체의 국외 송금이 금지되고, 외국여행 때 가져갈 수 있는 현금도 1회 3천 유로(약 428만원)로 제한된다.

유학생의 인출 한도는 분기별 1만 유로로, 외국에서 쓸 수 있는 신용카드 한도도 한 달에 5천 유로로 각각 묶었다.

키프로스 국내에서는 한 사람이 하루에 300유로 까지만 인출할 수 있고, 수표를 현금으로 바꿔주는 업무도 중단된다.

정기예금 계좌의 해지는 예금된 은행에 채무를 상환할 때 이외에는 허용되지 않는다.

이 자본 통제 규정은 모든 은행의 계좌와 대금 지불, 계좌 이체에 적용된다.

그리스 카티메리니와 파이낸셜타임스(FT) 등 일부 언론들은 키프로스의 자본 통제가 이날부터 7일간 시행된다고 전했으나, 이후 AP통신 등 다른 언론들은 키프로스 정부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4일간 적용된다고 보도했다.

키프로스 은행들은 구제금융 협상과 이행 조건을 둘러싼 협상이 진행되자 지난 16일부터 영업을 중단했다.

이후 협상이 타결되자 28일 다시 문을 열 예정이고, 은행 영업시간은 정오부터 6시간이다.

그러나 구제금융 조건으로 키프로스 민간 2대 은행인 라이키 은행이 청산절차를 밟고 최대 은행인 키프로스은행(Bank of Cyprus)도 손실(헤어컷)을 감수해야 해 키프로스는 은행 영업 재개 시 뱅크런 위기에 직면하고 있다.

키프로스가 이 같은 자본 통제를 단행하면 300억 유로를 예치한 러시아 예금주들이 크게 반발할 것으로 예상된다.

일부 러시아 기업들은 키프로스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거나 러시아 정부가 대신에 소송을 제기하는 방안 등을 검토 중이라고 외신들이 보도했다.

그러나 키프로스 정부가 주요 은행 두 곳을 폐쇄하면 러시아 예금주들이 소송에서 이길 가능성이 떨어진다고 전문가들은 전망했다.

키프로스에서 기업을 운영하는 한 러시아인은 AP통신과의 인터뷰에서 "러시아인들은 이런 상황(금융위기)에 익숙해 있다"며 러시아인들의 무더기 예금인출 사태 발생 가능성을 낮게 봤다.

그러나 그는 키프로스의 자본통제가 "기업인들에게 자신의 돈이 묶여버렸다는 느낌을 줄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오후 키프로스 수도 니코시아의 대통령궁 앞에서는 이번 사태에 항의하는 시위가 벌어졌다.

시위대의 비난은 키프로스 정부뿐 아니라 독일과 국제통화기금 등으로도 향했다.

키프로스가 구제금융 성사를 위한 후속 조치로 자본통제에 나섰지만, 문제는 여전히 남아 있다.

파이낸셜타임스는 EU 전문가들의 말을 인용해 이번 키프로스의 자본통제가 '공공 정책과 공공의 안전을 토대로 삼아서만 정당화될 수 있다'는 EU 협정 63조와 65조에 저촉된다는 견해를 보였다.

키프로스가 경제 회생 과정에서 유로화 사용을 포기할 가능성도 여전하다.

이오니스 카솔리데스 키프로스 외무장관은 독일 프랑크푸르터 알게마이네 차이퉁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지난주 진행된 구제금융 협상 과정에서 키프로스가 거의 유로존(유로화 사용 17개국)을 떠난 것이나 다름없다고 말했다.

그는 유로존 이탈이 "한동안 심각하게 고려했던 가능성"이라고 덧붙였다.

(부다페스트·서울연합뉴스) 양태삼 특파원 김세진 기자 tsyang@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