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부그룹이 농민들의 반대에 부딪혀 수출용 토마토 재배 사업을 접었다.

동부그룹 농화학 계열사인 동부팜한농은 경기 화성시 화옹지구에 토마토 재배용으로 지은 첨단 유리온실 사업을 중단한다고 26일 발표했다.

국내 농가가 생산하는 토마토와 전혀 다른 품종을 재배해 전량 수출하겠다는 게 동부의 구상이었다. 하지만 ‘골목상권’을 침범해 이윤만 추구하는 기업으로 매도하고 대규모 불매운동을 벌이겠다고 엄포를 놓는 농민단체들의 압박에 밀려 백기를 들었다. 국내 토마토 생산량 중 0.5% 미만인 수출 비중을 늘려 ‘농업 세계화’를 이루려던 꿈도 물거품이 됐다. 민간 자본을 유치해 기업농을 육성하고 농업 경쟁력을 강화한다던 농림축산식품부는 박근혜 정부 출범 후 ‘경제민주화 바람’을 의식한 듯 갈피를 못 잡고 있다.

2010년 7월 착공한 뒤 380억원을 투자해 작년 말 완공한 동부 유리온실은 15만㎡(약 4만5000평) 규모로 아시아 최대 크기다. 동부팜한농은 이곳에 농산물 중 세계 시장 규모(70조원)가 가장 큰 토마토를 심어 이달부터 시험 생산에 들어갔다. 국내 농가에서 생산하는 분홍빛 토마토(모모타로)를 피해 업소용으로 쓰이는 유럽계 붉은 토마토(다볼)를 재배해 전량 일본으로 수출하려 했다. 일본 토마토 시장은 연간 80만t에 달한다. 이 중 국내 토마토 농가가 일본에 수출하는 물량은 연간 2000t에 불과하다.

동부는 1988년 정부에서 영남화학을 인수해 비료사업을 시작한 뒤 작년 9월 다국적 기업 몬산토가 보유한 토종 종자기업인 흥농종묘를 사들이는 등 농업 분야의 수직계열화를 추진해왔다.

동부팜한농은 참고자료를 통해 “우리의 노력 여하에 따라 네덜란드와 같은 농업강국으로 성장할 수 있다고 보고 농업인들과 토마토를 공동으로 생산하고 수출하는 상생모델을 만들어 보려 했다”며 “그러나 일부 농협과 농민단체들이 동부팜한농을 이윤만 추구하며 느닷없이 골목상권을 침해한 기업인 양 매도했다”고 포기 이유를 밝혔다.

농민과 시장 안겹치는데 '뭇매'

동부팜한농은 이어 “불필요한 오해가 확산되는 것을 막고 농업 대표 기업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 유리온실 사업을 중단하기로 했다”고 덧붙였다. 그동안 농민단체들은 “농약과 비료, 종자, 농산물 유통사업까지 거느린 동부팜한농이 토마토 농사까지 하겠다는 것은 농민들의 목숨을 위협하는 행위”라고 주장했다. 토마토생산자협의회는 “동부가 토마토를 생산하면 수출 경쟁이 시작돼 국내 수출 농가가 큰 타격을 입는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에 대해 동부팜한농은 “국내 토마토 수출량의 95%가 방울토마토지만 우리 생산품은 주먹 이상 크기의 일반 토마토라서 시장이 전혀 겹치지 않는다”고 반박해왔다. 또 “국내 토마토 생산량 중 수출량이 0.4% 선인 데다 국내 업체 중 매년 100만달러 이상 토마토를 수출하는 곳은 한 곳도 없어 기업영농을 만드는 게 절실한 상황”이라는 논리를 펴왔다. 동부팜한농은 연간 900만달러 이상의 토마토를 일본에 수출할 예정이었다.

정부가 자유무역협정(FTA) 기금 87억원을 동부에 지원했다는 농민단체들의 주장에 대해서는 “농업 수출기지 개발 차원에서 정부가 상하수도 같은 기반시설에 쓴 돈”이라며 “온실 건설 자금에는 정부 자금이 전혀 들어가지 않았다”고 해명해왔다.

지난달부터 농민 시위가 더욱 거세지고 동부팜한농 제품뿐 아니라 동부화재보험 같은 계열사 상품 불매운동으로 확산되자 동부팜한농은 사업 철수를 결정했다.

기류가 변한 정부 상황도 고려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명박 정부 시절 임명된 서규용 전 농식품부 장관은 농업 경쟁력 강화를 위해 대기업 같은 외부 자본 유치에 적극적이었다. 농업법인 설립 제한 규정도 완화하고 비농업인 출자 한도도 50%에서 90%로 늘렸다. 박근혜 정부 출범 뒤 임명된 이동필 현 농식품부 장관은 대기업의 농업 참여에 부정적인 것으로 알려졌다.

농식품부는 대기업을 제외한 일반 농업법인이나 농협 등이 동부의 온실 사업을 이어받을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농업 법인들은 대부분 영세하고 농협도 까다로운 농협법 탓에 참여가 불투명해 아시아 최대 온실사업은 고사위기에 몰렸다.

정인설/김유미 기자 surisur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