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판 강소기업의 비밀] 전자레인지 부품 만들던 부전전자, 휴대폰 스피커 '빅3'로 변신
삼성전자에 휴대폰용 스피커를 납품하는 부전전자. 해당 분야에서 세계 1, 2위를 다투는 이 회사는 ‘계란을 한 바구니에 담지 말라’는 사업과 투자의 기본 원칙을 지키지 않는다. 연 매출 3000억원 중 90% 이상이 삼성전자 거래액이다. 삼성 외에 다른 기업과도 거래하며 철저히 리스크를 분산하고 있는 일반 협력사들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이다.

이석순 부전전자 사장(사진)은 삼성에 ‘몰빵’하는 이유를 자신감이라는 한 단어로 정리했다. 이 사장은 “우리 회사 생산 규모에 비해 삼성전자 주문량이 많아 삼성 매출이 늘고 있다”며 “기술력에서 자신이 있기 때문에 삼성전자 물량이 줄어도 다른 휴대폰 메이커와 충분히 거래할 수 있어 크게 걱정하지 않는다”고 했다.

◆노키아 배신으로 삼성 더 신뢰

[삼성판 강소기업의 비밀] 전자레인지 부품 만들던 부전전자, 휴대폰 스피커 '빅3'로 변신
핀란드 노키아와 거래하면서 아픈 경험을 맛본 게 삼성만 믿고 나가게 된 결정적 계기가 됐다. 노키아가 세계 휴대폰 1위를 지키던 2007년 일이다. 당시 이 사장은 노키아 주문을 맞추기 위해 생산 설비를 완전히 바꾸기로 결정했다. 꼬박 1년 동안 20억원을 투자했다. 그러던 중 청천벽력과도 같은 소식을 들었다. 느닷없이 노키아가 “휴대폰 전략이 바뀌었으니 부품 주문을 취소하겠다”고 일방적으로 통보했다. 수백억원의 매출 손해와 기회비용까지 합하면 피해 규모는 1000억원에 가까웠지만 보상이라고는 한 푼도 못 받았다.

22년간 거래한 삼성은 이렇게 행동한 적이 없었다. 이 사장은 “삼성전자는 부품을 발주한 뒤 번복하는 일도 없고 행여나 주문을 취소하면 반드시 보상한다”고 했다.

이 사장은 신속 정확한 결제도 삼성의 강점으로 꼽았다. 삼성은 ‘110’ 법칙을 준수한다. 협력업체에 주1회 마감을 하고 10일 내 현금으로 물품대금을 지급한다. 이에 비해 다른 해외 업체들은 월1회 마감에 1개월 내 돈을 주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삼성판 강소기업의 비밀] 전자레인지 부품 만들던 부전전자, 휴대폰 스피커 '빅3'로 변신

◆삼성과 선두권으로 함께 도약

이 사장이 처음부터 삼성과 인연을 맺을 수 있었던 건 아니다. 1988년 경기 안산에 회사를 세울 때만 해도 주로 유선전화를 이어주는 중계기 사업을 했기 때문에 삼성과는 거래가 없었다. 1990년 전자레인지 작동의 시작과 끝을 알려주는 신호음 부품(버저)을 삼성에 납품했으나 매출이 많지는 않았다.

기회는 회사 설립 10년 만에 찾아왔다. 1998년 삼성이 새 휴대폰 방식을 선택하면서 물꼬를 틀 수 있었다. 당시 부호분할다중접속(CDMA) 중심이던 삼성이 유럽형 규격(GSM)으로 휴대폰을 다변화하는 과정에서 부전전자가 새로운 협력사로 낙점받았다. 이 사장은 “기존 방식인 CDMA 휴대폰용 부품을 공급하는 업체를 제외하다 보니 삼성 휴대폰과 전혀 관련이 없던 우리가 기회를 얻었다”고 설명했다. “전자레인지나 세탁기 부품에서 인정을 받았기 때문에 휴대폰 부품도 납품할 수 있었던 것 같다”고 덧붙였다.

그래도 처음엔 어디까지나 휴대폰 문자메시지 도착을 알려주는 버저가 거래의 전부였다. 2001년 세계에서 처음으로 슬림형 스피커를 개발하고 2004년에 모듈을 만들어 상용화하면서 성장 가도를 달렸다.

이듬해 휴대폰 스피커 분야 국내 1위로 올라섰고 세계 10위권으로 발돋움했다. 이후 부전전자는 삼성과 함께 컸다. 삼성전자가 세계 휴대폰 1위에 오른 2011년에 부전전자도 휴대폰 스피커 분야에서 세계 ‘빅3’ 반열에 올랐다. 지난해부터는 AAC 같은 중국 업체들과 세계 1, 2위를 다투고 있다.

◆일본이 포기한 사업에서 대박

부전전자는 일본의 오판 덕도 봤다. 2000년 초반만 해도 휴대폰 스피커 분야에서 호시덴 같은 일본 업체들이 득세했다. 후발주자인 한국과 중국 업체들이 추격하자 호시덴은 이 사업을 접고 고급 스피커와 마이크에 집중했다. 휴대폰용 스피커 원가 경쟁력에서 뒤처질 수밖에 없다는 판단에서였다.

이 사장은 반대로 생각했다. 기술력에서 이길 수 있어 충분히 해볼 만한 싸움으로 여겼다. 게다가 세계적인 휴대폰 메이커인 삼성전자와 협력하면 못할 게 없다고 봤다. 결과적으로 이 사장의 예상이 맞았다. 스마트폰의 멀티미디어 기능이 강화되면서 휴대폰 스피커 성능이 중요해지는 추세다. 이 사장은 “삼성의 전략을 일부 공유할 수 있다는 점이 경영 방향을 잡도록 하는데 큰 도움을 주고 있다”고 했다.

안산=정인설 기자 surisur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