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6월. 경영전문저널 하버드비즈니스리뷰(HBR)에 짤막한 글이 하나 실렸다. 제목은 ‘디자인적 사고(design thinking)’. 글을 쓴 사람은 미국에 본사를 둔 다국적 디자인 기업 IDEO의 팀 브라운 최고경영자(CEO)였다.

산업디자이너 출신인 그는 이렇게 적었다. “난 경영학을 전공하지도 않았고, 엑셀이나 회계도 잘 모른다. 하지만 난 경영도 디자인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점을 깨달았다. 디자이너처럼 세상을 읽는다면 제품은 물론 서비스, 공정, 전략을 개발하는 방식까지 싹 바꿀 수 있다.”

이 글은 경영학계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 재무나 회계, 마케팅 등 경영전문대학원(MBA)식 접근만 중시하던 학계에 “경영에는 사람들의 보이지 않는 욕망까지 읽는 디자인적 상상력도 필요하다”고 일침을 가했기 때문이다.

IDEO는 ‘디자인업계의 맥킨지’로 불리는 회사다. 제품은 물론 기업문화와 서비스 전략까지 디자인한다. 미국 경제주간지 비즈니스위크는 IDEO를 이렇게 정의했다. ‘인류학자, 심리학자, 엔지니어 그리고 그래픽디자이너의 프리즘으로 컨설팅을 제공하는 디자인 업체.’ 브라운은 “다양한 전략을 갖춘 ‘약간은 이상하고 별난 회사’로 봐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레고를 좋아했던 소년

브라운은 1962년 영국 프레스턴 근처의 작은 마을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사진사, 어머니는 교사였다. 어릴 적 여느 남자아이들처럼 레고(Lego) 블록 조립을 즐겼다.

1970년대 초 영국은 석탄 공급 부족으로 정전이 잦았다. 그가 10살이던 1971년 어느 날도 마찬가지였다. 저녁 즈음 갑자기 집의 전등이 꺼졌다. 저녁 식사를 준비하던 어머니는 요리를 멈춰야만 했다. “내가 도울 방법은 없을까?” 고민하던 브라운의 눈에 방금 갖고 놀았던 야광 레고 블록이 보였다. 어둠 속에서 빛을 발하고 있었다.

“블록으로 손전등을 만들자!” 그는 야광 레고를 조립해 만든 자신의 ‘작품 1호’를 어머니에게 선물했다. 어머니는 무사히 식사 준비를 마쳤고, 이후 정전될 때마다 브라운의 손전등을 썼다. 이때 모형 제작의 힘을 처음 깨달았다.

대학에 진학할 때 택한 전공도 산업디자인이다. 머릿속 구상을 손으로 직접 구현하는 작업이 즐거웠기 때문이다. 영국왕립예술학교(RCA)에서 석사 과정을 마친 뒤 1987년 IDTWO(1991년 IDEO에 합병된 회사)에서 디자이너 생활을 시작했다. 이후 IDEO의 샌프란시스코 사무소 총책임자와 유럽 총책임자를 거쳐 2000년 CEO 자리에까지 올랐다.

브라운이 직원들에게 강조하는 것은 ‘손으로 생각하기(thinking with your hands)’다. 기존 MBA식 경영이론은 경우의 수를 모두 계산한 뒤 신중한 의사결정을 권한다. 그러나 브라운식 경영은 다르다. “아이디어가 있을 때 망설이지 말고, 프로토타입(prototype·떠오르는 아이디어를 만질 수 있는 형태로 만든 미완성 제품)부터 손으로 만들라”는 게 핵심이다.

애플의 최초 컴퓨터 마우스도 IDEO의 프로토타입에서 나왔다. 구슬처럼 생긴 방취제 뚜껑을 플라스틱 버터 용기 밑바닥에 붙여본 것이다. IDEO의 한 디자이너가 아이디어가 떠오르자마자 주변에 있는 재료로 만든 첫 번째 프로토타입이다. 이 방취제 뚜껑 마우스는 오늘날 PC용 마우스의 원형이 됐다.

애플의 마우스뿐만 아니다. IDEO의 고객 리스트엔 펩시콜라와 도요타, JP모건 등 세계 300여개의 우량 기업이 올라 있다. 삼성전자, LG전자, SK텔레콤, 현대카드 등 국내 기업도 있다. 직원 수 520명의 디자인 회사가 이름만 대면 누구나 알 만한 대형 글로벌 기업과 협업하고 있는 것이다. IDEO의 별명은 ‘이노베이션(혁신) 공장’. 세계 최대 생활용품업체인 프록터앤드갬블(P&G)은 모든 임원을 IDEO로 보내 이노베이션 교육을 시키기도 했다.

○“욕망을 디자인하라”

브라운이 말하는 ‘혁신의 비밀’은 간단하다. “예측 가능한 디자인을 버리고, 보이지 않는 욕망의 본질을 디자인하라”는 것이다. 산업디자이너 초년병 시절, 한 덴마크 전자회사로부터 개인용 팩시밀리를 디자인해 달라는 의뢰를 받았다. 프로젝트 개요가 봉투에 담겨 전달됐다. 이미 개념이 잡힌 상품에 껍데기를 입히는 일밖엔 할 수 없었다. 깔끔한 외관의 팩시밀리를 만들었지만 그 제품은 1년 반만에 시장에서 사라졌다. 전자제품의 특성상 수명이 짧았던 것이다.

큰 충격을 받았다. “예쁘고 편리하게 만드는 것만으론 충분하지 않구나. 이런 디자인만 하다가는 기업의 도구밖에 되지 못한다. 고객이 진정으로 원하는 디자인을,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디자인을 하고 싶다.” ‘디자인적 사고’에 대한 고민이었다. 이후 서비스·문제 해결 디자인 영역에서 실력을 뽐내기 시작했다.

2000년 미국 ABC방송의 뉴스쇼 나이트라인은 IDEO에 “현대 소비자들을 위한 쇼핑카트를 새롭게 만들어달라”고 주문했다. 브라운을 포함한 직원들은 매장에 가서 직접 카트를 밀고, 고객을 인터뷰했다. 그렇게 나온 새 카트는 여섯 개의 바구니를 붙였다 뗐다 할 수 있는 탈·부착형 제품이었다. 음료를 마시며 쇼핑하는 사람들을 위해 컵 홀더 두 개도 달았다. 방송이 나가자마자 IDEO 본사로 전화가 쏟아졌다. 미국 전역의 사업가들로부터 걸려온 문의 전화였다.

뱅크오브아메리카(BoA)와 2005년 함께 진행한 ‘잔돈은 됐어요(keep the change)’ 프로젝트도 ‘디자인적 사고’가 성공적으로 발현된 사례다. 브라운은 많은 사람들이 잔돈을 모아 목돈을 만들고 싶어 한다는 점에 착안했다. “4500원짜리 물건을 산 뒤 5000원으로 결제하고 나머지 500원은 통장에 자동으로 적립해주는 서비스는 어떨까?” 이 서비스를 도입한 뒤 BoA의 저축예금 계좌 수는 1년 만에 1만2000개나 늘었다.

○사람과 융합의 힘

브라운이 CEO 자리에 오른 때가 그리 좋은 시기는 아니었다. ‘닷컴 거품’이 터진 직후였다. 고객사였던 실리콘밸리의 기업들이 잇따라 무너지면서 IDEO도 타격을 받았다. 그는 “다른 회사의 제품과 서비스를 디자인하기 전에 우리 회사부터 새롭게 만드는 디자인 작업을 시작하자”고 외쳤다.

IDEO 혁신의 알맹이가 ‘사람’이란 점에 집중했다. ‘T’자형 인재를 찾기 시작했다. T자형 인재는 한가지 분야에서 깊이 있는(I) 전문가인 동시에 다방면에 박식한(ㅡ) 사람을 일컫는 말. 인류학을 전공한 엔지니어, 작가 출신의 심리학자, MBA를 취득한 디자이너 등이다. IDEO의 힘은 다학제적 팀이 어우러질 때 솟아나는 아이디어에서 나온다는 판단이었다. 자기 분야는 잘 알지만 다른 분야의 일은 모르는 ‘I’자형 인재는 채용하지 않았다. 디자인 기업인 IDEO에 디자인만을 전공한 직원이 거의 없는 이유다.

외부 아이디어도 적극적으로 흡수했다. 브라운은 인도의 가난한 계층을 위해 깨끗한 물을 공급해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미국의 디자이너를 잔뜩 고용하는 대신 11개의 인도 내 물(水) 관련 기구와 팀을 이뤘다. 워크숍을 통해 신제품과 서비스, 비즈니스 모델을 찾고 이 중 5개 기구와 협업해 새로운 형태의 물 보관소와 운송기구, 공급 과정을 만드는 데 성공했다.

그는 “사람들은 ‘디자인’하면 검은 터틀넥을 입고 뿔테안경을 쓴 사람들이 혼자 해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며 “하지만 진짜 디자인은 세상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모두와 함께 고민하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고은이 기자 kok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