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만 믿었다가 노후 생활비 '반토막'
김성일 씨(65·가명)는 5년 전 은퇴한 직후 매입한 원룸 건물에서 나오는 수입으로 살고 있다. 5년 전 경기 시흥에 원룸 12개가 있는 건물을 보증금 3억원을 안고 10억원에 샀다. 당시엔 12개 원룸이 꽉 차 있었다. 원룸 한 개당 보증금 2000만~3000만원, 월세 30만원 정도를 받을 수 있었다.

2011년 초반까지만 해도 월 300만원가량의 수입이 들어왔다. 그러나 주변에 건물이 하나 둘씩 늘고, 경기가 나빠지면서 빈 방이 생기기 시작했다. 공실을 줄이려다 보니 세입자들의 요구대로 보증금 비중을 높이게 됐다. 보증금 3000만원에 월세 30만원짜리 방이 보증금 4000만원에 월세 15만~20만원짜리 방으로 바뀌는 식이었다.

요즘에는 이 건물에서 월 150만원밖에 얻지 못한다. 대출금 4억원에 대한 이자 월 167만원에도 못 미친다. 수도·보일러 수리와 도배·장판 등에 매달 20만원가량 유지보수비용이 드는 것을 감안하면 손해다. 팔고 싶어도 제값 받고 팔기 어렵다. 그는 “노후 대비가 다 됐다고 생각했는데 월 100만원 생활비마저 빠듯한 지경”이라고 푸념했다.

◆부동산 의존하면 노후대비 어렵다

은퇴 후 노후생활은 재무적으로 보면 ‘적립하는 시대’에서 ‘인출하는 시대’로 접어드는 시기다. 버는 돈은 줄고 쓸 일은 많은 때다. 자녀의 결혼 등으로 목돈이 들어갈 수 있고, 부부의 건강 악화에도 대비해야 한다. 현금이 제일 필요하다는 얘기다.

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우리나라 은퇴 가구의 평균 부동산 자산 비중은 82%(통계청 가계금융 조사)에 이른다. 당장 현금으로 만들 수 있는 예·적금과 주식·펀드 등의 비중은 15%에 불과하다. 부동산 경기 악화로 돈이 묶이고, 현금 부족으로 발만 동동 구르는 김씨 같은 이들이 적지 않은 이유다.

전문가들은 노후에 갑자기 현금흐름을 창출하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에 젊었을 때부터 3층 연금체제 등으로 대비해야 한다고 조언하고 있다. 김현규 하나은행 강남PB센터 팀장은 “보건사회연구원에 따르면 은퇴 후 노후 생활에 필요한 최소 생활비는 184만원이고 풍족한 생활을 하려면 월 300만원은 있어야 하는데, 국민연금으로 받을 수 있는 돈은 평균 월 46만원 수준”이라며 “개인연금과 퇴직연금 주택연금 등을 통해 소득을 보완할 방법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개인연금 주택연금 등으로 현금 확보

만약 특별한 노후 대비가 되지 않았는데 50~60대 장·노년에 이르렀다면 무리한 투자를 통해 노후에 대비하려 하기보다는 지금 있는 자산을 잘 현금화하는 것이 중요하다. 신동일 국민은행 압구정PB센터 팀장은 “습관적으로 정기 예·적금만 이용하는 이들이 있는데, 저축성 보험과 즉시연금 등을 활용해서 세제혜택을 받는 식으로 하면 현금을 20~30% 더 손에 쥘 수도 있다”고 조언했다. 1주택자라면 주택연금에 가입할 경우 현금흐름을 극대화할 수 있다. 만 60세에 3억원짜리 주택을 연금화하면 월 70만원가량을 평생 받는다.

소액이라도 돈을 버는 재취업도 대안이다. 박승안 우리은행 투체어스 강남센터 부장은 “월급으로 500만원을 받는 사람은 20억원의 예금을 가진 것과 동일한 효과를 갖는다”며 “은퇴 후에는 바로 이 가치가 ‘0’이 되지만, 중소기업에서 월 250만원을 받는 자리로 옮긴다면 다시 10억원 예금을 갖는 셈이 된다”고 설명했다. 허승택 농협은행 퇴직연금부장은 “매달 50만원씩 이자를 받으려면 정기예금 2억원이 있어야 하지만, 이 정도의 돈을 받는 일자리를 찾는 것이 더 쉽다”며 “농협이 소개하는 농번기 일손돕기 일자리 같은 경우 월 50만~60만원을 벌 수 있고 일도 고되지 않아 수요가 많다”고 말했다.

이상은 기자 se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