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정부가 자국 기업을 상대로 임금 인상을 위한 전방위 압박에 나섰다. 경제단체장과의 모임에서 임금 인상을 공식적으로 촉구한 데 이어 이번엔 노동조합까지 끌어들일 태세다. 경기부양을 위한 고육지책이다.

‘아베노믹스(무제한 금융완화와 재정지출 확대를 골자로 한 아베 신조 총리의 경제정책)’의 성패에 정권의 사활이 걸렸다는 판단에서다.

◆도 넘은 임금 인상 압박

아소 다로 일본 부총리 겸 재무상은 지난 22일 내각회의 뒤 열린 기자회견에서 “지금 기업들의 내부 유보금이 두터워진 만큼 노동분배율(총이익에서 인건비가 차지하는 비율)을 높이는 것이 (일본 최대 노동자단체인) 렌고(連合)가 할 일 아니냐”고 말했다. 경제정책을 책임지고 있는 최고위 관료가 노동조합에 임금 투쟁을 주문하는 극히 보기 힘든 장면이 연출된 것이다.

지금까지 자민당은 주로 대기업의 지지를 받았고, 야당인 민주당은 노조를 기반으로 정치 세력을 넓혀 왔다. 노조를 부추겨 기업을 압박하는 태도는 자민당의 기존 색깔과는 180도 상반되는 것이다. 더구나 아소 부총리는 한때 시멘트 회사를 운영했던 경영자 출신이다.

그의 이번 발언은 임금 인상에 미온적인 일본 기업들을 정면으로 겨냥한 것이다. 아베 총리는 지난 12일 요네쿠라 히로마사 게이단렌(經團聯·한국의 전경련에 해당) 회장 등 경제 관련 3개 단체장과의 모임에서 “실적이 개선되는 기업은 임금 인상을 적극 검토해 달라”고 요청했다.

그러나 돌아온 기업들의 대답은 미지근했다. 요네쿠라 회장은 “우선 일시금이나 보너스를 올리고, 경기 회복이 본격화하면 임금 인상과 고용 증대를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아직은 임금을 올릴 단계가 아니라는 것을 에둘러 표현한 것이다.

◆“기업 내부 유보금 많다”

아베 내각이 기업들에 임금 인상을 요구하는 근거는 크게 세 가지다. 우선 엔화가치 하락이다. 아베 총리가 자민당 총재로 당선된 작년 9월 달러당 77엔대였던 엔화가치는 최근 들어 94엔대 안팎으로 급락했다. 일본 기업들의 숙원이던 ‘엔저(低)’를 아베 총리가 단기간에 해결한 것이다. 이로 인해 수출 기업들의 실적 개선 조짐도 나타나기 시작했다. 도요타자동차 등 일본 주요 자동차 회사의 올 1~3월 영업이익 전망치는 최근 3000억엔가량 상향 조정됐다.

일본 기업들의 내부 유보금이 많다는 것도 아베 내각의 공략 포인트다. 일본 전체 기업의 내부 유보금은 작년 말 기준 281조엔으로 10년 전보다 1.7배가량 증가했다. 반면 일본 근로자의 평균 임금은 1997년 월 37만엔에서 작년엔 31만엔으로 오히려 6만엔 줄었다. 일본 기업들이 이익을 내도 적극적인 투자에 나서지 않고, 고용과 급여도 늘리지 않은 채 현금만 쌓아왔다는 게 아베 내각의 비판 논리다.

아베노믹스의 최종 목표는 ‘디플레이션 탈출’이다. ‘금융 및 재정완화→엔화가치 하락→기업 실적 개선→경기부양→디플레이션 탈출’로 이어지는 선순환 고리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임금 인상은 이런 고리의 핵심 요소다. 자칫 물가만 오르고 봉급은 제자리걸음을 할 경우 국민들의 소비 증가는커녕 생활이 더 어렵게 되고, 유권자들의 마음도 자민당을 떠나게 된다. 기업의 팔을 비틀어서라도 임금을 올려야만 정권의 생명이 연장될 수 있는 구조인 셈이다.

당하는 기업들은 답답한 상황이다. 게이단렌 관계자는 “아직 엔저 효과가 실제 기업수익으로는 이어지지 않고 있다”며 “당장 임금을 올리기는 쉽지 않다”고 말했다.

도쿄=안재석 특파원 yag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