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들 어색한 만남…지경부 중재 먹힐까
4일 서울 반포동 팔래스호텔. 지식경제부에서 디스플레이 업무를 담당하는 공무원들이 총출동했다. 이들은 눈길을 뚫고 약속시간인 낮 12시보다 30분 먼저 나타났다. 지경부에서 산업 지원 업무를 총괄하는 김재홍 성장동력실장(차관보)은 오찬 장소에서 20분가량 기다렸고 김 실장을 따라 나온 사무관들은 호텔 밖에서 대기했다.

CEO들 어색한 만남…지경부 중재 먹힐까
공무원들의 ‘의전’을 받은 주인공들은 김기남 삼성디스플레이 사장과 한상범 LG디스플레이 사장. 두 사람 모두 오전 11시50분께 왔다. 넥타이를 매고 온 김 실장과 달리 약속이나 한 듯 노타이 차림이었다.

3자 회담 장소로 쓰인 이 식당의 직원은 “공무원들이 업체 사람보다 먼저 와서 식사 장소까지 수행하는 모습은 처음 본다”고 했다.

이날 오찬은 삼성과 LG의 디스플레이 수장들이 처음 만나는 자리였다. 난타전 양상을 보인 두 회사 간 특허 소송의 전환점을 마련하기 위해서다. 작년 4월 인력 유출 사건으로 시작해 10개월간 7건의 민사 소송을 주고받은 터라 최소한 “확전은 자제하자”는 의사를 서로 확인하고 싶어했다.

김 사장과 한 사장은 회동 후 “큰 방향에서 하나씩 해결해 가겠다”면서도 ‘소송을 취하할 의향이 있느냐’는 질문에는 입을 닫았다.

이에 비해 지경부는 좀 더 속도를 내고 싶어했다. 김 실장은 만남에 앞서 “두 회사가 (소송을 취하하고) 합의하자는 쪽으로 의견을 정리한 걸로 안다”고 했다. 김정일 지경부 반도체디스플레이과장도 “(합의를 보기로) 사전에 협의가 됐으니 오늘 나오는 거 아니겠냐”고 지원 사격을 했다. 행사 사진도 이례적으로 지경부에서 각 언론사에 제공했다. 이에 대해 한 사장은 “지경부가 너무 빨리 나간 것 같다”고 했다.

업계에서는 비판의 화살이 정부로도 향할 수 있어 지경부가 선제적으로 나선 것으로 보고 있다. 한국의 간판 기업들인 삼성과 LG 간 극한 대립이 지속되면 결국 불똥은 정부로도 튈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중국과 대만의 디스플레이 업체들이 한국을 빠른 속도로 추격하고 있어 정부로서도 뒷짐만 지고 있을 수 없다고 판단한 것으로 업계는 받아들이고 있다. 김 실장은 “한 회사가 나서서 해결하기 어렵다고 생각해 국익 차원에서 정부가 나선 것”이라고 설명했다.

양사가 화해모드로 접어든 건 지경부의 ‘종용’ 때문만은 아니다. 두 회사 내부 분위기도 분쟁 해결에 우호적인 쪽으로 바뀌고 있다.

작년 말 삼성디스플레이 최고경영자(CEO)가 김 사장으로 바뀐 뒤 삼성 내부에서 “무조건 싸우자”는 분위기가 누그러졌다. 김 사장은 지난달 23일 “건설적인 방향으로 가겠다”고 소송에 대해 처음 말문을 열었다. 삼성 미래전략실도 강성에서 화해 쪽으로 가닥을 잡은 것으로 알려졌다.

LG 내부에서도 “싸움을 확대하는 건 이익이 되지 않는다”는 온건론이 힘을 얻기 시작했다. 한 사장은 지난달 8일 삼성과의 타협 가능성을 묻는 질문에 “시기상조”라고 일축했다가 지난달 21일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선 “삼성이 결자해지한다면 특허 공유 등 서로 주고받을 게 있는지 얘기해볼 수 있다”고 합의 가능성을 열었다.

양사 간 분쟁거리가 소진됐다는 분석도 나온다. 유기발광다이오드(OLED)에서 시작해 액정표시장치(LCD)로 소송이 확대되고 TV뿐 아니라 스마트폰과 태블릿PC까지 물고 들어가 더 이상 추가 소송을 제기할 대상이 없다는 얘기다.

정인설/정성택 기자 surisur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