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신년기획] 무너져가는 중산층 복원시킨 영동군 '와인 클러스터'
3일 오후 충청북도 영동군 주곡리의 와이너리(와인 양조장). 1만9800㎡ 규모의 포도농장을 운영 중인 김덕현 씨(30)가 나무 막대기로 발효탱크 안을 연신 휘젓고 있었다. 발효 초기인 포도의 껍질과 원액을 하루에 두 번씩 순환시키는 ‘펌핑오버(pumping over)’ 과정이다. 김씨가 작업 중인 33㎡ 크기의 발효실에는 750㎖ 와인 1만3000병을 생산할 수 있는 포도 원액 등이 숙성되고 있었다.

발효실 밖에선 김씨의 어머니 한춘화 씨(56)가 인터넷 주문이 들어온 와인들을 포장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한씨는 “크리스마스와 연말연시에는 하루 100여병을 전국 각지로 배송한다”며 “온 가족이 나서도 일손이 달려 직원 한 명을 고용했다”고 가쁜 숨을 몰아 쉬었다.

경기도 고양시에서 골프연습장을 운영하다가 2010년 귀농한 김씨가 지난해 생산한 와인은 8000여병. 연 매출은 2억원에 달한다. 그는 “포도 농사만 짓던 2010년엔 매출이 5000만원에 불과했다”며 “포도를 가공해 와인을 만들자 매출과 소득이 모두 4배가량 뛰었다”고 말했다.

◆와이너리 운영 농가 76곳

2005년부터 영동군이 조성 중인 와인 클러스터 ‘와인시티’가 무너져가는 지역 중산층을 다시 일으켜 세우는 모범 사례로 주목받고 있다. ‘고소득’ 일자리를 만들어내고 주변 상권을 활성화하는 제조업 못지않게 1차 산업과 서비스산업도 고도화하면 지역경제를 떠받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2000년대 초반만 해도 영동군은 여느 농촌지역처럼 변변한 일자리가 없는 낙후된 곳이었다. 소비와 생산의 중심축인 청년들은 하나둘씩 도시로 떠났다.

하지만 영동군이 발상전환을 통해 포도 농사에 고부가가치인 와인산업을 접목하자 귀농 인구가 몰리는 살기 좋은 곳으로 탈바꿈했다. 이곳에서 와이너리를 운영 중인 농가는 76곳. 토종와인의 40%를 차지하는 국내 최대 와인 생산 기업인 ‘와인코리아’에 주주로 참여해 포도를 공급하는 농가도 600여곳에 달한다.

와인 산업이 정착되자 농가소득도 크게 상승했다. 영동군 포도 농가의 지난해 평균 소득은 2507만원. 와인 클러스터로 지정되기 직전인 2004년 1826만원보다 38%가량 증가했다.

정기종 영동군 농정과 주임은 “영동군 전업 포도 농가가 2000곳 정도인데 와인 산업에 참여하는 농가가 30% 이상을 차지한다”며 “포도농사와 와이너리를 같이 운영하는 곳은 인근 농가의 연평균 소득보다 2000만~3000만원 더 버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농부이자 와인 제조자인 안금락 씨(56)는 “상품성이 없는 3등급 포도 5㎏을 팔면 5000원밖에 못 받지만 같은 양으로 와인을 만들면 750㎖ 와인 4병을 생산해 8만원의 수익을 얻을 수 있다”고 전했다.

◆몰리는 귀농인구

영동이 국내 최대 와인 생산지로 떠오르자 귀농 인구도 늘었다. 지난해 충북지역 귀농 가구는 845가구인데 이 중 316가구(37%)가 영동군으로 이사왔다. 덕분에 인구 감소도 멈췄고, 최근 5년 동안에는 매년 평균 1200명 정도 늘어났다.

지역 상권도 활성화되고 있다. 와이너리를 운영하려는 30~40대가 유입되면서 취학 연령 자녀 수가 증가해 폐교 직전의 학교들이 다시 살아났다. 소득이 늘자 병원은 물론 중산층이 주로 이용하는 골프연습장과 외국어학원 등도 속속 생겨났다. 와이너리가 집중돼 있는 주곡리엔 지난해 골프연습장 1개, 병원 2개가 들어섰다.

와인산업 덕분에 관광객도 증가 추세다. 2010년 시작한 영동군 와인축제에는 첫해 3만7000명, 2011년 29만8000명, 지난해는 32만7000명이 찾았다. 최해욱 영동대 와인발효학과 교수는 “와인 축제로 인한 경제 효과가 지난해 86억4200만원에 이른다”고 추산했다.

영동=김우섭 기자 dut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