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업주가 산업현장의 재해를 스스로 진단하고 예방하도록 의무화하는 ‘위험성평가 제도’가 1일부터 시행된다. 산업계도 제도 도입의 취지에 대해서는 공감하지만 벌칙조항 도입에 대해서는 부정적이다. 전체 산재의 80% 이상이 발생하는 영세 사업장에서는 이 제도가 시행되는지조차 잘 모르고 있는 것도 문제점으로 지적됐다.

○산재, 관 주도 감독에서 민간 자율로

위험성평가 제도는 정부가 나서 산업재해를 감독하고 예방하던 것에서 벗어나 사업주가 자율적으로 관리하도록 유도하는 게 핵심이다. 산업안전보건법에 사업주의 산재 예방 책임이 규정돼 있지만 그간 선언적 수준에 그쳤다. 실질적인 예방 활동은 고용노동부 지방고용노동청의 지도감독을 통해 타율적으로 이뤄졌다. 그러나 지난해 9월 정부는 ‘위험성평가 고시’를 만들었고, 이 고시는 1일부터 적용된다.

이 제도가 시행됨에 따라 사업주는 폭발성 물질, 압착기계 등 사업장의 위험요인을 스스로 파악하고 개선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연 1회 이상 자체 점검하고 관련 자료도 보관해야 한다. 원칙적으로는 근로자가 1명만 있어도 위험성평가를 해야 하지만 실질적으로는 중간관리자를 둘 정도로 일정 규모를 갖춘 사업장이 대상이 될 것이라고 고용부는 설명했다.

자가 평가에는 전문성이 필요해 관련 교육을 받지 않고 사업체가 스스로 시행하기는 어렵다. 교육은 안전보건공단 지도원(지부)이 지역 사정을 고려해 연중 실시한다. 정진우 고용부 산재예방정책과장은 “평가의 전 과정이 사업주에게 일임돼 있어 주관적 판단이 많이 반영된다”며 “맞춤형 산재 예방 대책을 세우는 게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OECD 산재율 3위, 개선될까

고용부는 이번 자율규제 도입이 중장기적으로 한국의 산재 수준을 낮춰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고용부에 따르면 2011년 산재를 당한 근로자는 9만2392명이고 이 가운데 사망자만 2114명이다. 하루에 247명이 다치고 6명이 사망했다. 한국의 산재 사망률은 산재 관련 통계를 국제노동기구(ILO)에 보고하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25개국 가운데 터키와 멕시코 다음으로 높다.

고용부가 위험성평가 제도를 도입한 것은 산재 예방 선진국 가운데 이 제도를 시행하는 곳이 많기 때문이다. 영국은 1992년, 독일은 1996년, 일본과 싱가포르는 2006년 이 제도를 도입했다. 영국은 이 제도를 도입한 뒤 산재 사망자 수가 OECD 국가 가운데 가장 낮은 0.07명으로 떨어졌다.

고용부는 산재 사고의 80% 이상이 소규모 사업장에서 생기고 있는 점을 감안해 여러 가지 지원책도 함께 시행한다는 방침이다. 예를 들어 위험성평가 과정에서 시설 개선이 필요할 경우에는 융자 지원을 하고, 시설 개선비는 연말 세액공제를 해준다.

○산업계 도입 취지 공감, 제재엔 이견

2011년 산업재해 사고에 따른 경제적 손실은 약 18조원. 이 가운데 생산손실 등 사업주가 부담하는 비용을 포함한 ‘간접비용’이 산재보험을 중심으로 하는 ‘직접비용’보다 4배 많아 사업주의 부담도 적지 않다.

그러나 미이행에 따른 벌칙조항 도입에 대해서는 의견이 엇갈린다. 고용부는 위험성평가 미실시를 이유로 처벌하는 조항을 아직 별도로 두지 않고 있고, 당장은 도입할 계획이 없다고 밝혔다. 그러나 처벌조항과 같은 효과를 낼 수 있도록 우회적인 ‘압박 규정’을 만들 가능성은 있다. 임우택 한국경영자총협회 안전보건팀장은 “위험성평가에 대한 벌칙조항을 도입하려면 산업안전보건법상의 다른 안전 의무도 완화하는 쪽으로 가야 자율규제의 취지를 살릴 수 있다”고 말했다.

양병훈 기자 h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