뼈 빠지게 일했는데 노후 불안…이심전심 '정치적 파워' 형성
저출산·고령화로 5060인구 급증…정책 결정 영향력 점점 더 강해져
[한국 뒤흔든 '그레이 파워'] 미래 권력구도·경제정책, 똘똘 뭉친 5060에 물어봐!


2002년 대통령 선거. 40대는 정확히 반으로 갈렸다. 노무현 민주당 후보와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의 득표율은 48.1% 대 47.9%. 그리고 10년 후. 12월19일 50대가 된 이들은 투표장으로 몰려갔다. 출구조사 기준으로 투표율은 89.9%. 정치평론가들이 “실제 투표율이 그 정도인지 믿을 수 없다”고 말할 정도였다. 60대 투표율도 78.8%로 전체 투표율(75.8%)을 앞질렀다. 그들의 선택은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를 대통령으로 만들었다. 5060세대가 한국 정치의 중심세대로 떠오르는 순간이었다. 이들이 최대 정치세력으로 떠오름에 따라 한국 사회는 앞으로 각종 변화를 맞게 될 것으로 보인다. 특히 5060세대를 위한 정책이 미래 세대에 부담을 줄 경우 세대 간 갈등이 불가피할 것이란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복지 대신 성장

90%에 가까운 50대의 경이적 투표율은 위기의식에서 나왔다는 게 전문가들의 평가다. 배종찬 리서치앤드리서치 본부장은 “선거운동 기간 내내 20대와 30대의 투표 의향이 높아질수록 적극 투표하겠다는 50대도 늘어나는 현상이 나타났다”며 “급격한 변화에 대한 경계심이 반영된 것”이라고 말했다. 50대가 자신들의 가치를 투표를 통해 지키려 했다는 설명이다.

이들이 지키려 했던 가치는 무엇일까. 배 본부장은 “안보 위협과 복지 위협이 이들을 투표장으로 이끌었다”고 말했다. 북방한계선(NLL) 논란과 북한의 미사일 발사는 이들의 안보의식을 다시 자극했고 복지가 화두로 부상하자 자신의 부담이 더 커질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는 설명이다. 이런 현상은 50대가 살아온 경험과 맥이 닿아 있다.

50대는 전쟁으로 폐허가 됐던 어린시절을 분명히 기억한다. 그들은 콩나물시루 같은 교실에서 공부하며 보릿고개를 넘겼다. 근면 자조 협동이 이들의 어린 시절 정신세계를 지배했다. 그리고 스스로 한국 경제 성장의 주역이 됐다. 그 대가로 부를 이루기도 했다. 실제 한국에서 금융자산을 가장 많이 보유한 세대는 50대이며 50대의 핵심인 베이비부머의 83%는 집을 갖고 있다. 이런 경험은 이들로 하여금 무차별적인 복지 확대에 대한 거부감을 갖게 만들었고, 위기의식을 불러일으켰다는 것이다. 스스로의 노력만으로 성취를 이뤘던 정서에 복지 확대는 위협으로 다가온 셈이다.

홍경준 성균관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50대는 어느 세대도 맛보지 못한 성장에 대한 강렬한 경험을 갖고 있다”며 “이런 경험이 이들을 투표장으로 이끈 것 같다”고 말했다. 성장과 복지라는 가치가 대립하자 성장에 표를 던졌다는 것이다. 경제발전을 위해 뼈 빠지게 일했는데 정작 노후는 불안한 지금의 상황도 이들의 결집을 부추겼다는 분석이다.

○다음 대선에선 더 위력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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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60세대의 정치적 영향력은 다음 대선에선 더 위력적이다. 통계청이 5년 단위로 예상하는 ‘장래 인구추계’를 보면 지금(2010년 기준)은 40대(850만7000명), 30대(812만8000명), 20대(700만1000명) 순이다. 50대(667만6000명)와 60대(404만8000명)는 인구 수만 놓고보면 한참 뒤처진다.

하지만 저출산·고령화 추세로 시간이 흐를수록 인구 구조는 변화를 맞게 된다. 당장 2015년에는 50대(811만3000명)가 40대(846만5000명)에 이어 ‘빅2’로 올라선다. 2020년에는 50대(843만6000명)가 40대(803만7000명)를 제치고 최대 인구 집단으로 등장한다.

2030년에는 50대(800만명)와 60대(824만명)가 20대(478만5000명), 30대(678만1000명), 40대(493만4000명) 등 다른 연령대를 압도한다. 5060세대는 모두 1624만명으로 20~40대를 모두 합한 숫자(1650만명)와 맞먹는다.

막대한 유권자 수와 투표 현장에서 나타나는 특유의 응집력이 결합하면 5060세대를 거스르는 후보는 설 자리를 잃을 수밖에 없다.

○정책적 딜레마

2000년 11월7일 미국 대통령 선거. 모든 시선은 플로리다주로 쏠렸다. 이 지역은 고령자가 많았고 주지사는 조지 W 부시 공화당 후보의 친동생이었다. 누구나 부시의 낙승을 예상했다. 하지만 결과는 박빙이었다. 앨 고어가 선전한 것이다. 결국 대법원에 가서야 승패를 가릴 수 있었다. 고어가 이렇게 선전한 것은 고령자를 향해 의료보험 개선을 공약으로 내걸었기 때문이다. 고령자가 선거와 정책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보여준 사례다.

한국도 이번 대통령 선거를 기점으로 앞으로 고령화 정책이 가장 중요한 이슈가 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배 본부장은 “다음 선거에선 한쪽으로 표를 몰아주는 성향을 가진 5060을 잡기 위한 정책이 더욱 확대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책적 딜레마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다. 신영석 보건사회연구원 부원장은 “이번 투표 결과를 두고 은퇴를 앞둔 사람들이 일하는 사람들의 운명을 결정했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며 “이 같은 양상이 지속되면 경제정책 전체의 균형이 무너질 수 있다”고 말했다.

투표에서 가장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 5060에 맞춘 정책을 펴다 보면 미래 세대의 짐이 더 커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김용준 기자 juny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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