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 모두가 기업가입니다. 남 탓을 하지 않고 자기 탓을 하는 게 혁신과 도전정신으로 상징되는 기업가정신의 출발입니다”

한국경제신문은 29일 서울 중림동 사옥에서 ‘기업가정신 살리기’를 주제로 좌담회를 열었다. 참석한 전문가들은 기업가정신이 활성화되지 못하면 투자와 고용 위축, 국민소득 감소, 양극화에 따른 반기업정서 확산 등을 불러올 수 있다고 우려했다. 중소기업은 정부 지원에 안주하기보다는 기술개발을 통해 자생력을 기르고, 대기업은 손쉽게 돈벌려 하지 말고 협력업체의 발전을 지원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최병일 한국경제연구원장이 사회를 맡은 좌담회에는 노부호 서강대 명예교수, 이승훈 서울대 명예교수, 김동선 중소기업연구원장, 유병규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본부 본부장 등이 토론자로 참석했다.

▶사회=1960~1970년대에 비해 기업가정신이 약해졌다는 지적이 많다.

▶이 교수=당시엔 무언가에 도전해 망해도 잃을 게 없었다. 궁핍함 속에서 과감함이 나온 것이다. 정부도 기업활동을 적극 지원했다. 창의와 혁신에 대한 성과를 기업이 누릴 수 있다는 믿음을 주는 정책이 있었다. 하지만 최근 들어 기득권을 버리고 새로운 미래를 찾으려는 헝그리 정신이 약해졌다. 스스로 여건을 만들고 도전하기보다는 정부의 지원에 기대는 의식이 강해지면서 기업가정신이 위축됐다. 내가 못사는 것이 정부 탓만은 아니다. 남 탓 하지말고 자기 탓 먼저 해야 한다.

▶유 본부장=197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의 왕성했던 기업가정신이 지금의 한국 경제를 만든 밑바탕이 됐다. 1990년대 말 외환위기 때 활발하게 이뤄진 벤처창업도 위기 극복에 기여했다. 하지만 벤처 거품이 꺼진 이후 눈에 띌 만한 중소기업이나 대기업이 많이 생겨나지 않았다. 글로벌화가 진전되면서 불확실성과 대외 리스크가 커진 데다 투자에 대한 위험부담이 높아졌고 반기업정서가 확산돼 기업가정신이 후퇴했다.

▶사회=과거 역동적이었던 기업 생태계가 잘못된 정부 정책과 사회적 분위기 탓에 활력을 잃은 것 같다. 중소기업은 중견기업으로, 중견기업은 대기업으로 성장하려는 의지가 없다. 한국 경제가 언제부터 기업가정신을 상실했나.

▶김 원장=2000년대 벤처붐이 이어지지 못하고 사그라지면서 거품론이 나왔다. 벤처에 대한, 모험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생기면서 창업 의지 등 기업가정신이 위축됐다. 글로벌기업가정신연구(GEM) 보고서에 따르면 2010년 한국의 기업가정신 지수는 조사 대상 22개국 가운데 7위로 중상위권이다. 하지만 18~24세 젊은이들의 창업이 전체 창업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0.56%로 선진국 평균인 3.5%를 한참 밑돈다. 그나마 생계형 창업은 많지만 기술 창업은 드물다.

▶노 교수=1987년 민주화 운동 이후 공정거래법을 중심으로 대기업 규제가 강화되고 노사관계도 악화됐다. 기업가정신을 복원하려면 규제와 노사관계의 새로운 변화가 필요하다. 외환위기가 도전 대신 안정을 추구하는 경향을 만드는 데 일조했다고 본다. 교육 시스템도 문제가 있다. 시험을 치기 위한 교육과 창업을 위한 교육은 전혀 다르다. 앉아서 공부만하는 사람보다는 그렇지 않은 사람이 기업가정신을 가진 경우도 많다. 교육제도를 근본적으로 바꿔야 한다.

▶사회=지적한 대로 청년층의 창업 부진은 교육의 문제도 큰 것 같다. 경영대 커리큘럼에 재무관리나 원가구조는 있지만 기업을 만드는 교육은 없다. 교육에서 혁신적인 방안이 나와야 한다.

▶유 본부장=우리 사회의 성공 가치관이 잘못돼 있다. 부모들은 자녀들이 좋은 대학을 나와 좋은 일자리 갖고 편안하게 사는 것을 성공으로 여긴다. 자녀가 창업경진대회 등에 나가 상을 타면 혹여나 대기업에 취직 안하고 창업을 할까봐 걱정한다고 한다. 이래서는 기업가정신이 발현되지 않는다. 중소기업이 중견기업으로 성장하기를 꺼리는 것은 정책에 문제가 있어서다. 중소기업은 과보호하고 중견·대기업은 과규제하기 때문이다.

▶김 원장=존경할 만한 기업과 성공사례 등에 대해 가르치는 조기교육 시스템이 필요하다. 어릴 때부터 존경하는 기업인이 누구이고, 어떤 성공사례가 있는지 알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사회=지금처럼 기업가정신이 발휘되지 못하면 한국 경제의 미래가 심각할 것 같다.

▶유 본부장=경제발전뿐 아니라 사회, 국가적 발전도 정체될 것이다. 기업가정신은 투자로 이어지는데 투자가 안 이뤄지면 고용과 일자리에 문제가 생기고 이는 국민소득과 연결된다. 경제 궁핍화에 따른 소득양극화는 결국 대기업에 대한 반감으로 이어지고 다시 기업가정신이 위축되는 악순환으로 나타날 것이다.

▶사회=기업가정신 활성화를 위해 대·중소기업이 어떻게 바뀌어야 하나.

▶김 원장=성공한 중소기업 경영자를 만나보면 정부에서 어떤 지원을 해주는지조차 모르는 경우가 많더라. 정부 지원에 의존하기보다 기술과 사업성을 투자로 유치시키려는 마인드를 가진 기업인이 성공한다. 정부 지원이 나눠주기식이어서는 안된다. 통계를 보면 매출 1000억원 이상을 올리는 벤처 기업이 2005년 68개에서 지난해 381개로 크게 늘었다. 이들 중 상당수가 안정적 수요를 가진 대기업의 1차 협력업체다. 여기에 안주하면 더 이상 성장할 수 없다.

▶노 교수=중소기업이 어려운 것은 돈이 없어서가 아니다. 기업가정신이 약하기 때문이다. 일본은 중소기업 보호정책을 대부분 없앴다. 우리의 중소기업 정책은 기업가정신을 오히려 약화시키고 있다. 우리나라는 자본과 인력이 대기업에 집중돼 있다. 이를 활용하지 않으면 성장할 수 없다. 대기업을 사악한 존재로 여기고 규제할 게 아니라 대기업의 탁월한 혁신능력과 투자를 성장 주춧돌로 삼아야 한다.

▶이 교수=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이 다 기업가라는 인식을 가져야 한다. 미래를 스스로 책임지는 기업가정신을 가져야 한다.

정리=이유정 기자 yj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