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최대 전자 양판점 야마다덴키. 이 회사는 1978년 군마현의 동네 양판점으로 시작해 33년 만에 연 매출 1조엔이 넘는 대기업으로 성장했다. 일본 상장사 중 성장 속도가 가장 빠른 기업이다.

일본 최대 인테리어 업체인 니토리도 진기록을 갖고 있다. 1972년 가구점 2개로 시작해 130개가 넘는 매장에서 매년 2억개 이상의 제품을 팔고 있다.

전자부품 회사로 유명한 니덱(日本電産)도 비슷한 길을 걸었다. 1973년 세 평짜리 시골 창고에서 처음 회사를 만들어 30년 만에 계열사 140개의 대기업이 됐다.

세 기업은 일본 내에서 고속 성장의 대명사로 불린다. 일본의 ‘잃어버린 20년’으로 불리는 1990년대 이후 가장 크게 성장한 기업이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이들 기업에는 또다른 공통 분모가 있다. 모두 오너경영을 하는 기업이라는 점이다. 나가모리 시게노부(니덱), 야마다 노보루(야마다덴키), 니토리 아키오(니토리) 라는 걸출한 오너 경영인을 배출하며 일본 경영학 교과서를 새로 쓰고 있다.

○신속 과감한 결정이 성장 배경

니덱의 성장사는 인수·합병(M&A)의 역사다. 1990년대 이후 매년 한 건 이상의 M&A를 성사시켰다. 기술력은 있지만 실적이 부진한 기업을 골라 사들이는 방법을 택했다. 매물은 대부분 나가모리 회장이 직접 골랐다. 직원들과 함께 발로 뛰고 정보도 수집해 매수 기업과 시기를 결정했다. 인수 대상은 주로 중대형 모터, 소프트웨어, 반도체 등으로 한정하고 후보 기업 리스트를 항상 품에 안고 다녔다.

나가모리 회장은 인수 대상을 확정하면 속전속결로 진행하되 절대 구조조정을 하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다. 감원 없이도 1년 내 실적을 개선시킬 수 있다는 자신감 때문에 과감하게 M&A를 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JP모건증권의 기타노 하지메 일본 투자 전략가는 “오너십이 있는 기업들은 과감한 투자를 결정할 수 있지만 대부분의 일본 회사들은 단기적인 이익률만 보고 신규 투자를 하지 않아 침체에 빠졌다”고 분석했다.

소니가 대표적인 예로 꼽힌다. 전문 경영인 체제로 전환된 뒤 사업부 간 경쟁과 갈등으로 의사결정이 늦어진 게 화근이 됐다. 급변하는 정보기술(IT) 업계의 변화에 신속 대응하지 못한 탓에 2008년 이후 4년째 대규모 적자를 내고 있다. 주가는 전성기의 5% 수준으로 추락했다.

이에 비해 당장 돈이 되지 않더라도 과감한 투자를 단행한 삼성전자는 실적과 주가에서 매번 신기록을 세우고 있다.

때문에 해외에서는 한국식 경영이 벤치마킹 대상으로 떠오르는 분위기다. 2010년 미국의 제너럴일렉트릭(GE) 임원들이 대거 방한해 한국식 오너경영을 배워간 게 대표적이다.

○지배구조는 시장 선택에 맡겨야

세계적으로 오너 기업들이 승승장구하면서 오너 경영의 장점을 주목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캐나다 비영리단체인 지속가능경영네트워크(NBS)는 지난 2월 “삼성전자, BMW, 월마트 등에 투자한 주주들의 만족도가 높게 나오면서 과거에 부정적 평가를 받아온 오너기업들이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로 떠오르고 있다”며 “대내외 여건이 어려울수록 오너기업의 경영성과가 우수한 편”이라고 분석했다.

미국의 뉴스위크도 2010년 말 “금융회사들이 무책임하게 타인 자금으로 도박을 한 게 글로벌 금융위기의 교훈”이라며 “오너 경영 기업이었다면 그런 큰 위험에 노출되지 않고 여전히 세계 경제의 심장을 뛰게 만들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실적 면에서도 오너 경영 체제가 전문 경영인 체제를 압도한다는 연구결과가 속속 나오고 있다.

지난해 크레디트스위스는 2000년부터 2010년까지 아시아 10개국 오너기업 3568개사의 주가 수익률이 시장 수익률을 상회한다고 발표했다. 특히 한국과 중국,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기업 수익률이 높은 편에 속했다.

2010년 언스트앤영도 2005년부터 2007년까지 서유럽 기업 3만여개를 분석한 결과 오너 경영 기업의 성장률(21.5%)이 일반 기업(14.9%)보다 높았다는 보고서를 냈다.

전삼현 숭실대 법학과 교수는 “기업 지배구조엔 정답이 없는 만큼 오너 경영과 전문 경영체제를 택할지는 시장 자율에 맡기고 정치권은 기업이 투명경영에 힘쓰도록 유도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정인설 기자 surisur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