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출퇴근길 주인님을 모시는 자동차 시트입니다. 하루 종일 사무실 의자에 앉아 일하시느라 힘드시죠? 직장생활 스트레스로 치질에 허리 디스크, 어깨 결림까지…. 온 몸에 피로물질을 달고 와선 길이 왜 이렇게 막히냐며 툴툴대실 때면 제 맘이 아픕니다. 고3 담임 선생님께서 말하셨죠. “공부는 머리로 하는 게 아니라 엉덩이로 하는거야!” 운전도 마찬가지랍니다. 차만 잘나가고 힘 좋으면 뭐하나요. 앉은 자리가 불편하면 타기가 싫은데. 이제부터 제가 시원하게 마사지도 해드리고 겨울철엔 따뜻하게 해드릴 게요. 침대만 과학인가요 뭐, 절 그냥 자동차에 달린 의자로 보시면 큰 코가 아니라, 엉덩이 다치십니다!


◆앉아도 앉지 않은 듯

자동차 회사들은 인체 골격 모델을 가지고 수백 번씩 테스트를 거쳐 운전석를 설계한답니다. 근육과 척추의 부담을 줄이기 위해 압력에 따라 반응하는 쿠션도 만들죠. 장시간 운전해도 피로감을 느끼지 않게 해줘야 하니까요. 요즘엔 ‘무중력 시트’라는 것도 나왔답니다. 자동차가 무슨 우주선이냐고요? 닛산이 일본 게이오대 연구소와 4년간 공동 연구했다는데 원리는 쉬워요. 무게가 많이 쏠리는 부분은 푹신하게, 덜 쏠리는 부분은 단단하게 만든거죠. 마치 공중에 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고 해서 이름 붙였는데 허풍이 좀 심한가요? ㅎㅎ

스포츠카는 정반대입니다. 편안함보다는 차의 움직임이 고스란히 운전자에게 전달되도록 만들죠. 스포츠 버킷 시트라고 들어보셨죠? 양동이(bucket)처럼 탑승자의 몸을 넓게 감싸는 형태랍니다. 마세라티 그란투리스모의 헤드 레스트 일체형 스포츠 시트는 전체 높이를 300㎜ 늘려 머리부터 발 끝까지 시트에 푹 파묻힌 것 같죠. 고속에서 원심력이나 중력 가속도가 발생하면서 몸이 쏠릴 때 시트가 꽉 잡아준답니다.

운전자의 체형을 기억하는 똑똑한 시트도 있어요. 요즘 국산 중대형차에도 버튼을 누르면 시트가 앞뒤좌우로 움직이는 파워시트가 있죠. 고급 수입차는 어깨, 등, 골반 등을 중심으로 18가지나 방향 조정이 가능해요. 등받이와 시트 쿠션 내부에 설치된 스프링이 오르락 내리락하면서 허리에서 어깨까지를 지탱해주기 때문에 어떤 체격이더라도 맞춤형 의자로 만들 수 있답니다.


◆제자리에서도 살아 숨쉬는 듯

자동차 시트도 아기 기저귀처럼 숨 쉰답니다. 촘촘하게 구멍이 뚫린 통풍시트는 열전달성과 통풍성이 뛰어나 사계절 쓸 수 있죠. 쿠션과 등받이에 환풍기(Fan)가 있어 시트의 온도가 유지되고 몸에서 배출되는 습기를 제거해주는 기능도 있어요. 재질도 아토피, 알레르기를 일으키지 않도록 천연 물질로 가공하고 유해 물질이 검출되는지 검사를 받습니다. 볼보는 자동차 업계 최초로 국제안전직물 규격인 Oeko-Tex 표준 인증을 획득했을 정도로 친환경 시트를 만드는 데 극성이죠.

사고가 났을 때는 에어백뿐만 아니라 저도 부지런히 움직인답니다. 목과 머리를 지지하는 ‘액티브 헤드레스트’는 충돌 시 탑승자의 머리와 같이 움직여서 목뼈 부상을 막아주죠. 기아자동차 K9 등 국산 고급차에도 들어가는 전동 시트는 추돌 위험이 있을 때 ‘부르르’ 떨면서 위험을 경고해주기도 해요. 메르세데스 벤츠는 사고 위험이 감지되면 좌석이 자동으로 에어백이 작동하기 가장 좋은 자세로 위치를 바꾸고 동시에 공기가 팽창되는 시트를 개발했답니다. 이제 가만히 앉아 있어도 제가 다 알아서 척척 해주니 걱정 붙들어 매세요.

전예진 기자 ac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