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세 못읽은 PDP 올인·산요 인수 '재앙'
2006년 6월28일 일본 오사카에서 열린 파나소닉 주주총회. 마쓰시타전기산업(현 파나소닉)을 이끌던 나카무라 구니오(中村邦夫) 사장이 그룹 회장으로 추대됐다. 단상에 오른 그는 그룹의 장기 목표를 묻는 질문을 받고 “평판TV 세계 시장 점유율을 단기간 내 40%대로 끌어올리겠다”고 선언했다.

이를 위한 대규모 투자계획도 발표했다. “효고(兵庫)현 아마가사키(尼崎)시에 PDP(플라즈마디스플레이패널) 공장을 신축한다.” 예상 투자금액은 2100억엔(약 2조9000억원). 창사 이래 최대 규모였다. 창업주인 마쓰시타 고노스케(松下幸之助)에 이어 한때 ‘리틀 경영의 신’으로 불렸던 나카무라 신임 회장의 야심찬 계획에 주주들은 박수로 화답했다. 그러나 주총 자리를 울렸던 박수 소리는 얼마 지나지 않아 한숨 소리로 바뀌었다. 파나소닉의 추락은 이렇게 시작됐다.

○오판이 부른 참사

당시 PDP 분야 세계 1위는 파나소닉. 시장점유율 30%를 웃돌았다. 강점을 가진 이 분야에 대규모 투자를 단행, 한국과 중국 등 후발주자들을 아예 멀찍이 떼어놓으려는 계산이었다. 그러나 시장은 ‘경영의 신’을 외면했다. TV 시장의 주력 모델이 PDP에서 LCD(액정표시장치)로 넘어가기 시작한 것. 신축 공장이 완공된 2010년에는 이미 대세가 기울었다. 파나소닉의 아마가사키 공장은 1년여간 가동하다 이듬해인 2011년 10월 문을 닫았다. 현재 파나소닉의 세계 평판TV 시장 점유율(지난 2분기 말 기준)은 6.8%. 삼성전자(28.5%)의 4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

오판은 한번으로 그치지 않았다. 파나소닉은 차세대 성장동력을 키운다는 목표 아래 리튬이온전지에 강점을 보이던 산요전기를 2009년 전격 인수했다. 인수금액은 6600억엔(약 9조2000억원). 당시 일본 제조업계 인수·합병(M&A) 역사상 최대 금액이었다. 그러나 결과는 오쓰보 사장의 예상을 빗나갔다. 무엇보다 두 회사의 기술이 너무 달랐다.

일본 경제주간지 도요게이자이는 최근 파나소닉 엔지니어들의 말을 인용, “기술적인 측면에서 두 회사가 서로 도움을 줄 만한 요소가 거의 없었다”며 “기술적 검토를 조금만 제대로 했어도 이 지경에 이르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파나소닉은 결국 작년에 산요의 손실처리 비용으로만 2500억엔(약 3조5000억원)을 회계장부에 올렸다.

○내수시장이 독이 되다

일본의 인구는 1억2000만명을 웃돈다. 한국의 두 배를 넘는 수준. 큰 내수시장은 파나소닉에 오히려 독이 됐다. 해외시장 개척보다는 내수시장에 안주, 세계의 흐름을 읽는 데 둔감했다. 파나소닉의 매출 가운데 내수가 차지하는 비중은 작년 기준으로 48%. 반면 경쟁 기업인 삼성전자와 LG전자는 내수 비중이 10%대 후반에 불과하다.

뉴욕타임스는 이런 파나소닉의 내수 의존증을 ‘갈라파고스 증후군’이라고 정의했다. 육지에서 1000㎞가량 떨어진 갈라파고스제도의 동식물이 다른 곳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진화한 것을 빗댄 말이다.

한때 1조엔(약 14조원) 이상의 현금을 보유해 ‘마쓰시타 은행’이라고까지 불렸던 파나소닉. 그러나 지금은 생존을 걱정해야 할 정도로 궁지에 몰렸다. 작년에 이어 올해도 7000억엔 이상의 대규모 적자가 불가피할 전망이다.

도쿄=안재석 특파원 yag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