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외환위기 15년…'성장 낭떠러지'로 치닫는 경제
1997년 외환위기로 국제통화기금(IMF)에 긴급 구제금융을 신청한 지 오늘로 만 15년이 되었다. 외환위기는 한국 사회와 경제구조를 그 이전과 그 이후로 구분지을 만큼 사상 초유의 국난이었다. 경제의 틀과 제도, 산업계 구도는 물론 국민 개개인의 가치관까지 송두리째 뒤바꿔 놓았다. 위기에 강한 한국인의 유전자는 금 모으기 등 뼈를 깎는 고통을 감내해 2년여 만에 IMF 신탁통치를 벗어났다. 이제는 무역 1조달러, 소득 2만달러에다 G20을 주도하는 나라가 됐다. 그럼에도 사회는 집단 무기력에 빠져 있다. 초고속 성장과 초고속 위기 탈출 못지않은 초고속 추락인 셈이다.

우리가 직면한 경제악(惡)의 본질은 다름아닌 저성장이다. 성장률이 추락해 이제 3% 성장도 버거운 상황이다. 사회 변동과 불안의 뿌리인 소득분배 악화 문제도 결국은 저성장이 고착화된 것에 기인한다고밖에 볼 수 없다. 땀과 희생의 자조(自助) 정신은 사라지고 양극화에 대한 불만과 분배 욕구만 팽배한 저급사회로 전락하고 말았다. 외환위기가 남긴 짙은 그림자가 여전히 드리워져 있는 것이다.

IMF를 졸업하고도 외환위기 트라우마에서 허우적대는 것은 우리 경제에 대한 잘못된 진단과 오도된 처방에 근본 원인이 있다. IMF의 요구를 과도하게 수용하면서 연 30%의 초고금리 정책과 혹독한 구조조정을 단행한 것도 원인일 것이다. 그 결과 30대 그룹 중 15개가 부도 법정관리 워크아웃으로 사라졌다. 외환위기는 엉뚱하게도 환율 관리 등에 실패한 정부와 관료집단에 구조조정의 칼을 쥐어주고 말았다. 반면 모든 책임과 오명은 산업계가 온통 뒤집어 썼다.

외환위기 원인 공방에서 국내외 관료들과 공론가들은 그 책임을 모두 기업에 떠넘겼다. 그 결과 당초 IMF가 요구했던 4대 개혁 중 기업과 금융 구조조정만 가혹하게 이루어졌을 뿐 노동개혁, 공공개혁은 슬그머니 꼬리를 감추고 말았다. 기업가들에 대한 관료들의 완벽한 승리였다. IMF는 졸업했지만 그렇게 기업가정신은 사라졌다. 그렇게 무기력한 사회, 저성장 사회가 돼버렸다.

대통령 선거를 앞둔 지금 대기업 때리기, 경제민주화와 같은 퇴행적 정신이 지배하고 있는 것은 그 결과다. 실제로 1970년대부터 관료들은 줄기차게 중화학공업을 중복과잉이자 실패한 투자라고 맹비난해왔다. 관료들이 쓴 경제성장사를 보면 그 어디에도 지금 한국인이 삶을 의탁하고 있는 중화학공업의 기적적인 성공에 대한 기록을 찾아볼 수 없다. 경제발전이 온통 관료들의 치적으로만 기록됐을 뿐이다.

[사설] 외환위기 15년…'성장 낭떠러지'로 치닫는 경제
더구나 기업구조조정이란 명분 아래 국제금융시장의 투기자본이 대거 밀고 들어왔다. 1998년 이후 10여년간 투기자본은 한국에서 그들의 전성기를 맞았다. 국내의 좌파 반자본주의가 국제투기자본과의 기묘한 동거를 하며 한국 자본주의를 집요하게 공격했다. 기업들은 경영권 방어에 급급하게 됐다. 활짝 열어젖힌 증권시장은 중산층의 부(富)를 늘려주는 게 아니라 주기적으로 중산층의 부를 삭감하고 뽑아가는 그런 국제금융시장의 외곽 혹은 하부시장으로 퇴행하고 말았다. 상장기업들은 증시에서 자금을 조달하기는커녕 막대한 돈을 오히려 쏟아붓고 있다.

투자가 끊어지고 중국의 급부상에 자신감을 상실한 게 지금 한국 사회의 현주소다. 일자리는 중국 인도에 빼앗기고 있다. 성장이 안 될수록 빈부격차는 커질 수밖에 없다. 분배 악화는 저성장의 결과이지 원인이 아니다. 그럼에도 복지를 안 해서 성장을 못한다는 황당한 소리가 대선 후보들의 입에서 버젓이 되풀이되는 상황이다. 반자본주의와 반시장 캠페인이 시대정신으로 통용되는 사회에서 성장을 위한 투자가 일어날리 만무하다. 외환위기 이후 성장률이 급락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대선에서 누가 대통령이 되든 퇴행적인 반자본주의 노선을 뼈저리게 후회할 일만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미국은 재정절벽을 걱정한다지만 한국은 ‘성장의 절벽’ ‘투자의 절벽’으로 치닫고 있다. 누가 새로운 성장의 비전을 세울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