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톱깎이 세계 1위 업체인 쓰리쎄븐은 2008년 중외홀딩스에 팔렸다. 그해 창업주 김형주 회장이 갑자기 사망하면서 유족들이 상속세 150억원을 마련할 길이 없어 회사 지분을 매각했던 것. 유족들은 1년 뒤 겨우 돈을 마련해 회사를 되찾아왔지만 의욕적으로 진출했던 바이오 분야 자회사(크레아젠) 지분은 회수하지 못했다. 상속세 부담 때문에 1년여의 시간을 낭비하고 자회사까지 잃은 셈이다.

강상훈 동양종합식품 회장도 2005년 갑작스러운 부친의 유고로 회사를 물려받으면서 14억원의 상속세를 내느라 고생했다. 현금이 없어 지분으로 물납했다가 5년 후 겨우 돈을 마련해 되찾았다.

강 회장은 “상속받을 준비가 안 돼 있는 상태에서 4개월간 세무조사를 받고 감당하기 버거운 상속세를 부과받았다”며 “상속세는 기업의 존망을 결정지을 만한 큰 부담”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중소기업중앙회가 가업승계와 관련해 조사한 바에 따르면 조사 대상 기업의 54.1%가 가업승계의 주된 장애 요인으로 과중한 조세 부담을 꼽았다. 현재 국내 상속세·증여세 최고세율은 50%. 이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최고세율(26.3%)의 두 배 수준이다.

우리나라와 비슷한 최고세율을 가진 곳은 일본(50%)과 미국(55%)뿐이며 영국·프랑스(40%), 독일(30%), 대만(10%), 아일랜드(5%) 등은 세율이 낮다. 호주 캐나다 포르투갈은 상속세가 아예 없다.

이창호 중소기업중앙회 가업승계지원센터장은 “쓰리쎄븐처럼 상속세 때문에 지분까지 매각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며 “이런 상황을 맞으면 우량기업도 위태로워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런 문제 때문에 정부는 가업상속세 소득공제 한도를 확대하는 법안을 국회에 제출해놓은 상태다. 제조업에 한해 상속자산의 500억원까지 소득공제를 해주자는 법안이다. 현재는 전 업종에 300억원 한도 내에서 상속자산의 70%를 공제해주고 있다. 그러나 법안이 이번 국회를 통과할지는 미지수. 조유현 중기중앙회 정책개발본부장은 “대통령 선거를 한 달 앞두고 있어 여야가 법안 처리보다는 선거 준비에 바쁜 상황”이라며 “꼭 필요한 경제·민생법안은 선거일정에 상관없이 처리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업계에선 상속세제 개편을 포함해 장수기업 육성을 위한 장기 비전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가업 승계를 위해 현재 단발적으로 상속·증여세 소득공제 한도를 높이는 세법 개정안을 내놓고 있지만 승계에 필요한 컨설팅을 해준다든지, 후계자가 사업을 확대·발전시킬 수 있도록 새로운 판로를 개척해주는 등의 종합 지원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이윤재 숭실대 경제학과 교수는 “중소기업중앙회가 가업승계기업지원센터를 운영하고 있으나 법 개정이나 제도 마련 등을 주도적으로 추진하기 힘든 상황”이라며 “정부부처 내 전담 부서를 시급히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수진 기자 ps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