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임스 다이슨은 영국의 스티브 잡스로 꼽히는 발명가다. 산뜻한 아이디어와 창의적인 디자인으로 혁신적 제품을 내놓는 것으로 유명하다. 날개 없는 선풍기, 먼지봉투 없는 진공청소기 등이 모두 그가 발명한 제품들이다. 그가 최근 영국 BBC 방송에서 하드웨어 시장이 소셜미디어나 다른 실리콘 밸리의 어떤 소프트보다 빠르게 성장한다며 하드웨어 예찬론을 폈다. 스마트폰도 하드웨어에 기반을 둔 제품이고 20개가량의 세계적 하드웨어 업체들은 구글과 마이크로소프트보다 매출이 훨씬 높다는 것이다.

그의 말에 소프트웨어 산업 지지자들이 발끈했다. 디지털 현기증의 저자 앤드루 킨은 파이낸셜 타임스에 기고한 글에서 스마트폰의 성공은 하드웨어 속에서 소프트웨어를 잘 결합시킨 소프트웨어 제품이 아니냐며 엔진 없는 승용차를 자동차라고 부를 수 있겠냐고 반문한다. 그는 HP와 파나소닉 소니 노키아 델 등 하드웨어에서 한때를 풍미한 업체들이 결국 자신만의 소프트웨어를 발전시키지 못했기 때문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3차 산업혁명 시기에 산업의 가치는 결국 소프트웨어의 힘에서 나온다고 못 박는다.

하드와 소프트 경계 무너져

이들의 논쟁을 런던의 소프트 집적지 테크시티에 대한 영국 정부 지원 여부를 둘러싼 의견 충돌로 보는 시각도 있다. 하지만 지금 산업계는 이런 진부한 논쟁을 즐겨 들을 만한 여유가 없다. 서로의 영역을 넘나들며 경쟁해야 하는 이른바 ‘토털 이노베이션’시대다. 하드 업체들은 소프트 업체로 소프트 업체들은 하드 업체로 진출한다. 스마트폰과 같은 새로운 시장, 새로운 생태계를 찾기 위해서다.

구글은 5년 이내에 무인자동차라는 새로운 생태계를 만들려고 한다. 도요타의 프리우스를 개조해 비디오 카메라와 레이더, 도로 상태를 감지해 차량을 제어하는 다양한 센서장비 등을 탑재한 차를 만들었다. 이미 지난 8월에 30만마일의 도로 주행 실험을 마쳤으며 캘리포니아 주정부 등 3개주가 무인자동차 운행 허가까지 내주었다. MS의 빌 게이츠 역시 소형 원자로 시장에 적극 나서고 있다. 8월에는 그 분야의 세계적 전문가인 장순흥 KAIST 원자력공학과 교수를 미국 시애틀로 초빙해 공동 개발에 나서기로 했다.

새 비즈니스 생태계 창출 관건

하드웨어 업체들은 오히려 소프트웨어에서 신규 사업을 찾으려 안간힘이다. 소프트 인력을 끌어들이고 소프트 기업을 매수하려 하고 있다. 대표적 하드웨어 업체인 IBM이 최근 2년 사이에 매수한 소프트 기업만 10여개가 넘는다. 알고리드믹스 클래리티시스템 오픈페이지 SPSS 등 업계에서 한가락 하는 소프트 업체들을 대부분 인수했다. 가장 최근에는 소셜비즈니스를 기반으로 인적자원 정보를 기업에 제공하는 소프트 업체 케넥사를 13억달러(약 1조5500만원)에 인수했다. 맞춤형 서비스와 소프트웨어를 제공한다고 홍보한다. 소프트 업체로의 대전환이다. 한때 퍼스널 컴퓨터 생산의 선두주자였던 HP 역시 소프트웨어 부분을 강화하고 있다. 웬만한 하드웨어는 청산하려 한다.

도요타와 혼다 닛산 등 일본 자동차 업체들이 소프트웨어 인력을 집중 채용한 것은 오래된 얘기다. 현대자동차도 물론 소프트 인력을 충원하기에 바쁘다. 이미 자동차는 기계제품이 아니라 전자제품이라는 시각도 있다. 하드웨어 소프트웨어의 구분이 진부해지고 제조업과 서비스업의 구분도 불명확해지고 있다. 시장은 그렇게 빠르게 요동치고 있다. 그런데 구글이 프리우스에 무인장치를 탑재한 차를 우리는 구글차라고 불러야 하나 도요타차라고 불러야 하나.

오춘호 논설위원 ohcho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