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가용으로 출퇴근하는 공연비 씨는 오늘도 시동을 걸자마자 라디오를 켰다. 미국에서 현대·기아자동차의 연비 과장 사태 뉴스가 흘러나왔다. 한 칸밖에 남지 않은 연료 계기판의 불이 깜빡였다. ‘2주 전에 기름을 넣은 것 같은데….’ 창문 밖으로 스쳐지나가는 주유소 간판을 보니 한숨이 절로 나온다.

즐겨찾는 한 자동차 사이트에는 ‘국내 공인연비 자체측정 메이커’ 명단이 올라왔다. 조회수 1만여건, 추천 400여건. 댓글 공방은 역시나 ‘자체측정은 믿을 수 없다’는 쪽으로 기울고 있었다. 돌이켜보니 공인연비만큼 연비가 나왔던 적은 없었던 것 같다. 미국 소비자들에게만 보상해준다니 왠지 억울하다. 내 차의 연비도 수상하다.

○공인연비의 탄생비밀

공씨의 의뢰로 공인연비의 진실과 오해를 살펴봤다. 국산차가 모두 자체 시험설비로 연비를 측정하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우리나라는 미국처럼 자동차 회사가 소비효율 등급을 표시한 후 정부로부터 사후검증을 받는 신고제다.

수입차는 메르세데스 벤츠, 혼다를 제외한 BMW, 도요타, 폭스바겐 등 대부분 브랜드가 국가가 지정한 기관에 위탁한다. 시험설비가 있어도 요구조건이 까다로워 위탁하는 게 편하기 때문이다. 반면 유럽 중국 브라질 등은 등급 표시 단계부터 정부의 허락을 받아야 하는 허가제다.

자체 측정하면 ‘짜고 치는 고스톱’이 아니냐고? 자동차 회사들은 “정부의 인증을 받아야 하고 측정방법 절차와 규정을 준수해야 하기 때문에 연비를 부풀리기는 어렵다”고 말한다.

연비 측정 전 자동차는 시동을 끈 상태로 25도의 항온 항습실에서 12~36시간 동안 보관한다. 그 다음 차대동력계(시험용 굴림판)에 올려 공인연비 주행모드에 따라 주행한다. 주행거리, 평균속도, 최고속도, 정지횟수, 총 시험시간 등 세부 조건도 동일하게 통제한다. 차량 배기구에 연결한 시료채취관에 배기가스를 포집한 다음 분석하면 최종 연비가 도출된다.

미국에서 불거진 현대·기아차 사태는 이 과정에서 도로 저항값을 잘못 계산해 발생한 문제다. 현대·기아차 관계자는 “울퉁불퉁한 시멘트가 많은 미국 도로여건을 감안하지 않고 국내처럼 매끄러운 아스팔트 도로로 계산했다”고 설명했다. 국내에서는 같은 문제가 발생할 수 없다는 얘기다.

○그래도 이어지는 ‘연비’ 논란

그런데 왜 국내에서도 공인연비와 체감연비가 차이가 나는 걸까. 운전자의 운전습관, 온도, 노면 상태, 교통여건, 기상상황 등 복합적인 요인이 작용한다는 게 에너지관리공단의 설명이다. 그래도 ‘뻥연비’ 논란이 불거지자 지식경제부는 공인연비 검증 수사대를 강화하기로 했다.

그동안 새로 출시된 차종 중 5%의 표본을 추출해 사후검증을 실시했다. 지난해는 전체 400여종의 신차 중 검증을 받은 차는 23종에 불과했다. ‘자동차의 에너지소비효율·등급표시에 관한 규정’에 따르면 연비 사후검증시 같은 차종 3대를 2회 측정해 오차 범위 5%를 초과하면 1,2차 측정한 값의 평균치를 새로운 연비로 조정하도록 돼 있다. 지난해 연비가 하향 조정된 사례는 한 차례도 없었다. 지경부는 인기차종 위주의 검사에서 대상을 15%까지 확대하기로 했다.

내년부터 새로운 연비기준이 도입되면 연비가 하향 조정된다. 고속, 급가속, 에어컨 가동 등 외부조건을 반영한 수치다. 지금까지 발표된 신(新) 연비를 보면 기존보다 20~30% 낮다. 공씨가 올초 구입한 기아차 ‘레이’는 연비가 17㎞/ℓ에서 13.5㎞/ℓ로 떨어졌다. 그럼에도 자체측정과 신고제, 허술한 사후검증 시스템은 석연치 않은 점을 남긴다. 공씨는 “모르는 게 나을 뻔했다”며 이렇게 되뇌었다. 공인연비는 숫자일 뿐 오해하지 말자.

전예진 기자 ac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