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통과 배움의 시간여행.’

천년고도 경주에서 열린 ‘2012 가업승계, 아름다운 바통터치’ 행사의 핵심 키워드다. 특히 소통은 이번 행사의 한가운데를 꿰뚫는 큰 줄기였다.

26일 아침 8시30분 서울역. 신경주역으로 떠나는 KTX 탑승을 기다리는 황충길 전통예산옹기 회장(70)과 황진 기술실장(41) 부자는 처음 같이하는 기차여행이 서먹한 듯 서로 다른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잠시 후 열차에 올라서서도 마찬가지. 나란히 앉긴 했지만 대화 없는 어색한 분위기가 연출됐다.

이런 부자 사이의 두터운 얼음장벽이 녹는 데는 그리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한광일 한국웃음센터 소장이 중앙으로 나와 1, 2세대 간 자연스런 스킨십을 유도하는 ‘펀 펀 기차 유머콘서트’를 시작했다. “옆 사람 손잡고 칭찬 세 번만 하세요. 받는 사람은 ‘물론이지’라고 답하시고요.” 금세 박장대소가 터져 나왔고, 서로의 눈과 눈이 부딪쳤다.

황 회장은 “지난 20년간 둘이서 소통할 기회가 거의 없었는데 웃고 즐기다보니 많이 가까워진 느낌”이라고 말했다. 황 실장은 “아버지가 어려워 터놓고 얘기할 기회가 없었는데 이번에 좋은 시간을 많이 갖고 가겠다”고 말했다.

황 회장 부자만이 아니었다. 이들의 대각선 자리에 앉아 있던 컴윈스(정보통신 부품업체)의 김동섭 사장(70)도 처음으로 아들 김태용 부사장(42)을 행사에 데려왔지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어색해했다. 그러다 곧 손을 잡고 큰 소리로 게임을 따라하며 웃음보를 터트렸다. 김 부사장은 “아버지와 서먹하지 않을까 걱정이 컸는데 오히려 새로운 면을 봤다”고 말했다.

부자·모자·부녀·모녀 간의 벽을 깬 이들 가업승계 1, 2세대는 첫 견학지 포스코에서 배움에 열중했다. 이들이 공부한 내용은 포스코의 QSS(Quick Six Sigma) 프로그램. 포스코가 6시그마, TPS(도요타생산방식), 토털설비관리(TPM) 등 각종 경영혁신 프로그램에서 핵심 요소를 추출해 자사 작업현장에 맞게 만든 고유의 혁신 프로그램이다.

참가자들은 포스코로부터 QSS를 전수받아 성과를 내고 있는 인근 중소기업 심팩메탈로이를 방문, 자신들의 회사에도 프로그램 적용이 가능한지를 집중적으로 물었다. 특히 2세 경영인들은 “생산성 향상 정도가 얼마나 됩니까” “지속성을 담보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특별히 어려운 점은 없습니까”라고 질문 경쟁을 벌이기도 했다.

‘소통과 배움’에 대한 열정은 경주 최부자 고택 방문과 환영 만찬장으로 이어지며 한층 고조됐다. 경주 현대호텔에서 개그맨 김종석 씨의 사회로 열린 만찬에서 1, 2세대 기업인들은 가족애(愛)를 두텁게 했다. 국악인인 조통달 세종전통예술진흥회 이사장과 가수 조관우 씨, 소리새의 공연이 더해지며 만찬장 분위기는 한껏 달아올랐다.

손자까지 3대가 이번 행사에 참석한 자동차 부품 업체 태정산업의 이효찬 회장(65)은 “구슬이 서말이라도 꿰어야 보배인 것처럼 천년 기업을 일구기 위해서는 상부상조하는 소통과 배움을 멈춰서는 안 된다는 것을 배웠다”며 “천년 기업이 되는 비결 가운데 하나가 무리하지 않는 것이라는 점을 깨달았다. 앞으로도 제 그릇을 알고 빚지지 않고 경영에 매진할 것”이라고 말했다.

경주=김병근/은정진/박수진 기자 bk11@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