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는 작년 10월 결혼했다. 한 시중은행 프라이빗뱅커(PB)에게 신혼부부들을 위한 재테크 요령을 알려달라고 물었더니 당장 “남편의 월급이 얼마나 되는지 아느냐”고 물어왔다.

대답을 하려니 막막했다. “정확히 잘 모르겠다”고만 했다. 회사 내 선배 기자에게 물었다. 결혼한 지 10여년 된 선배 왈, “나도 배우자 월급 얼만지 잘 몰라.” ‘아, 나만의 문제는 아니었군요’ 작은 위안을 삼았다.

맞벌이를 하는 부부들 중에는 결혼한 뒤에도 통장을 하나로 합치지 않고 각자 알아서 돈을 관리하는 일이 많다. 통장을 합치는 과정에서 번거로움이 큰 탓이다.


◆통장도 ‘결혼’시켜야

PB들이 말하는 신혼부부 재테크 1번 항목은 ‘통장결혼’이다. 외벌이는 물론이고, 맞벌이 부부에게 통장결혼은 더욱 더 중요하다. ‘가계 재무상태’를 알 수 있는 기본 정보이기 때문이다. 수입총액을 파악한 다음엔 지출을 제대로 정리할 차례다.

PB들은 “매달 고정지출분, 매달 변동지출분을 나눠 정리하라”고 조언한다. 연간 지출분은 월별로 정리한 ‘고정지출+변동지출(고정지출의 10%안팎)’의 12배로 생각하면 편하다. 변동지출에 1.1을 곱한 이유는 10% 정도 여유분을 두기 위해서다.

◆부부 재무계획표 만들자

신혼부부가 결혼생활 초기 가장 먼저 맞닥뜨리는 문제는 주거비용이다. 양쪽 모두 부모와 함께 살다가 분가했다면 종전에 없던 주거비 부담으로 갑자기 어깨를 지그시 누르는 삶의 무게를 느끼게 될지도 모른다.

다락 같은 전·월세가는 왜 항상 물가상승률을 상회하는가, 경제학 지식을 총동원해 고민할 가능성이 높다. 만약 은행빚을 얻어 집을 마련했다면 이자를 셈하다 어느날 한탄할 것이다. “아, 내가 바로 하우스푸어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혼부부의 사정은 비교적 괜찮은 것이다. 아기가 생기지 않았다면. 만혼 추세를 고려하면 아이가 빨리 생겨야 할 텐데, 막상 아이가 생기면 임신·출산·육아에 들어가는 돈이 상상 이상이다.

이런 사태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서는 ‘부부 재무계획표’가 필요하다. 주거나 양육에 들어가는 돈이 해마다 얼마쯤 될 것인지 시나리오를 그려보는 것이다.

결혼 초기부터 수입의 절반 이상을 바짝 모으는 것이 중요하다. 아예 월급에서 적금통장으로 돈이 바로 빠져나가게 해서 남는 돈만 가지고 생활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수시입출 가능한 예비비 있어야

그런데 잠깐. 1년간 ‘적금 열심히 붓는’ 신혼생활을 경험해 보니 약간의 문제가 생겼다. 적금 비중을 의욕적으로 수입의 60% 이상 잡은 탓에 한꺼번에 지출이 몰릴 때는 현금이 일시적으로 부족한 경우가 있었다. 기껏 발품 팔아 높은 금리를 준다는 신협에 비과세로 적금을 들었는데, 고작 100만원이 부족하여 적금을 깨는 것은 너무나 아쉬운 일. 예금이나 적금을 담보로 대출을 받을 수 있다는 것도 알고는 있었지만 그렇게까지 할 성격은 아니어서 신랑과 상의해 해결했다.

예상치 못한 현금 수요에 대비해 일정액의 ‘수시입출금 자금’을 연못처럼 마련해 두기를 권한다. 완충지대(범퍼)가 있으면 급한 일이 생겼을 때 보험이나 장기저축상품, 연금상품 등을 해지하지 않아도 된다.

수시입출금 계좌에 돈을 넣어두면 대개 금리가 낮다. 연 0.5% 미만을 주는 곳이 대다수다. 기존 통장에 넣어두면 자금이 섞여버리는 문제가 있다. 개인적으로는 산업은행의 ‘KDB다이렉트’가 가장 금리가 높아 통장을 개설해 활용하고 있다. 당시에는 금리가 연 3.5%였는데 현재는 연 3.25%로 낮아졌다. 그래도 괜찮은 편이다.

산업은행과 거래하기 어렵다면 일반 시중은행이나 증권사 등의 MMDA(시장금리부 수시입출금식예금)나 CMA(종합자산관리통장), MMF(머니마켓펀드) 계좌를 활용할 수 있다. 연 1~3%대 금리를 기대할 수 있다.

◆돈에 꼬리표를 붙여라

비상 예비자금을 확보하는 것 외에도, 다양한 목적별로 통장에 이름을 붙여 관리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돈의 꼬리표’를 붙이는 것이다. 예컨대 주택마련을 목적으로 하는 통장, 해외유학을 목적으로 하는 통장, 출산·육아를 위한 통장 등이다. 시중은행은 통장 이름을 본인이 희망하는 대로 바꿀 수 있는 상품을 많이 내놓고 있다.

굳이 통장 겉표지를 바꾸지 않아도 온라인 뱅킹을 할 때 계좌명에 ‘아기몫’ ‘비상금’ ‘내집’ 등을 적으면 된다. 뭉뚱그려 ‘1억 모으기’ 등을 하는 것보다 목표에 따라 돈을 모으는 게 좋다. 돈의 우선순위가 정해지기 때문이다. 누구에게나 돈은 부족하다. 그러나 씀씀이엔 더 급한 것과 덜 급한 것, 바꿀 수 있는 것과 바꿀 수 없는 것이 있게 마련이다.

◆대출부터 갚아라

신혼부터 집을 마련했다면 대부분 대출금이 있을 것이다. 금리가 비교적 낮아지긴 했지만 집값이 비싼 탓에 원리금 상환 부담이 적지 않다. 채 갚지 못한 학자금대출 등이 남아 있는 신혼부부도 많다.

재테크 전문가들 중 대다수는 “대출이 있다면 대출부터 갚으라”고 조언한다. 연 7%짜리 신용대출 300만원을 갚지 않은 채 연 3.5%짜리 적금을 붓는 것은 손해다.

신혼부부의 ‘공동 대외비용’을 어느 정도로 유지하는지도 초반에 정해야 할 사항이다. 설 추석 등 명절에 들어가는 비용이라든가 양가 부모님들과의 식사 등 넓어진 가족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돈이 필요하다. 결혼식에 와준 사람들에게 답례를 할 필요도 있고, 한 번 도움을 받았기 때문에 다른 이들의 결혼식·상가 등에도 빠질 수 없다. 맞벌이라고 통 크게 쓰다가 나중에 후회하지 말고, 감내할 수 있는 수준을 부부가 협의해 정해두는 것이 좋다. 싸우지 말고.

이상은 기자 se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