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반지까지 팔아 직원들 월급 줄 때…日서 걸려온 전화 한통이 인생 바꿨죠"
1997년 여름, 산업용 방수복업체 싸이먼의 우병서 사장(65·사진)에게 인생을 바꾸는 한 통의 전화가 걸려 왔다. 발신자는 일본 1위 안전용품업체인 ‘미도리안젠’. 일본 경시청에서 사용할 경찰화 보호용 슈즈커버 2만장을 만들어달라는 주문이었다. 경시청은 당시 방일을 앞둔 김대중 대통령의 경호를 위해 방수 기능이 뛰어나고 미끄럼도 방지할 수 있는 제품을 급하게 찾고 있었다.

주어진 시간은 단 두 달. 2만장을 만들기엔 짧은 시간이었다. 그러나 우 사장에겐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직원들과 매일 밤을 새우는 강행군 끝에 납기를 맞추는 데 성공했다. 미도리안젠 측 반응도 좋았다. 싸이먼 제품의 품질에 크게 만족한 미도리안젠은 추가 거래를 제안했다. 수출길이 본격 열리는 순간이었다. 우 사장은 “뛰어난 제품을 저가에 공급하면서 납기도 정확히 지킨다는 입소문이 나기 시작해 매출이 급상승하기 시작했다”며 “회사 문을 닫을 위기가 극적으로 반전됐다”고 돌아봤다.

산업용 우비, 슈즈커버, 방진복 등을 만드는 싸이먼은 동종업계 국내 1위를 달리고 있다. 원래 한화그룹 수출부에 다니던 우 사장은 14년간의 월급쟁이 생활을 접고 1988년 서울 도화동에 기업을 꾸렸다. 하지만 기대했던 만큼 주문이 들어오지 않아 오랫동안 애를 태웠다. 1997년 이전엔 매년 평균 1억원의 적자가 났다. 수출 역시 원활하지 않았다. 대만 제품에 비해 가격 경쟁력이 떨어졌기 때문이다.

빚은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늘어만 갔다. 27평짜리 아파트를 담보로 대출을 받았고 얼마 안 되는 부동산도 모두 팔았다. 두 딸의 학원도 끊었다. 직원들에게 월급 줄 돈이 없어 결혼반지까지 팔겠다고 아내에게 손을 내밀었다. 우 대표는 ”아내는 한마디 말 없이 반지를 빼줬다”며 “훗날 더 좋은 걸로 해주겠다는 말밖에 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미도리안젠을 시작으로 일본과의 거래는 계속 늘어났다. 일본 자위대에 ‘메이드 인 코리아’가 찍힌 안전보호복을 납품했으며 다른 안전용품업체 신멘, 구로다루마 등에도 제품을 공급했다. 그는 “산업용 비옷은 몇 번 입고 버리는 소모성 제품이지만 일본 업체들은 몸통과 팔 부위의 색깔이 다르면 즉각 반품 조치를 할 정도로 까다롭다”며 “1년에 수만장을 일본에 수출하고 있지만 불량률은 제로에 가깝다”고 강조했다.

또 재봉선을 따라 비가 들어오지 않도록 재봉선 위를 재코팅하는 기법을 개발해 완성도를 높였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 같은 노력 덕분에 일본 수출은 매년 600만달러를 넘어선다. 일본 시장을 개척하자 캐나다, 터키, 노르웨이 등 다른 나라에서도 주문이 이어지고 있다. 지난해 수출은 800만달러에 달했다.

그는 경제위기 여파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기업인들에게 ‘최후의 순간’까지 결코 주저앉지 말아야 한다고 조언한다. “사업을 하다보면 벼랑 끝으로 몰리는 순간이 한두 번이 아닙니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기다리면 반드시 기회가 옵니다.”

김희경 기자 hk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