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킬로파숑은 불황이 만들어준 아이디어죠. 저는 그걸 실천했을 뿐입니다.”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자동차로 1시간30분 정도 떨어진 브레시아(Brescia). 릴라그룹 본사가 있는 이 자그만 시골에서 주세페 카빌리아 회장(59·사진)을 만났다. 그는 “갑작스런 경기침체로 고민하던 중 1960년대 영화 ‘비앙테 에 네로’를 떠올린 것이 킬로파숑 사업의 아이디어가 됐다”고 말했다. 무게를 달아 천을 구입한 뒤 재봉사에게 맡기던 영화 속 장면에 착안했다는 얘기다.

카빌리아 회장의 최종 학력은 초등학교. 어려서부터 그를 비롯한 3형제가 거리에서 옷장사를 했다. “줄곧 시장 바닥에 천을 깔고 앉아서 싸구려 옷을 팔았어요. 그 시절부터 가깝게 지냈던 공장이 1970~1980년대 들어서 ‘메이드 인 이탈리아’ 브랜드를 만들기 시작했고 그게 본격적으로 사업을 확장하는 계기가 됐죠.”

공장에서 재고나 이월상품을 대량으로 사들여 직영 소매점에서 내다파는 사업이다. 현재 릴라에서 옷을 도매로 사가는 나라만 36개국. 병행수입을 하는 유통업체들이 주요 고객이다.

그의 출퇴근 시간은 아침 7시부터 저녁 8시까지로 하루에 20~30개의 일정을 소화한다. 최고경영자(CEO)이자 최고재무책임자(CFO)인 그는 바이어(MD) 역할까지 겸하고 있다. 토요일에도 아침 7시면 어김없이 출근해 거래 공장을 둘러본다. 휴가도 따로 없다. 어느 지역에서 어떤 사람들을 대상으로 장사를 해야할지 매장을 물색하기 위해 이탈리아 전역을 수시로 돌아다닌다. 그의 수행비서 칼로타 달 포초 씨는 “30년 넘게 현장을 누볐기 때문에 유행을 선도할 수 있는 입지를 잘 짚어낸다”며 “주요 관광 도시뿐 아니라 외국 이주 노동자들이 사는 작은 마을도 자주 찾는다”고 전했다.

카빌리아 회장은 값비싼 ‘럭셔리 브랜드’의 신상품에 환호하는 사람들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는 “패션이라고 하면 무대 위의 모델, 화려한 스포트라이트에 비싼 가격을 떠올리는데 사실은 모든 사람들이 매일 입고 신는 게 패션”이라며 “슈퍼마켓에서 장보듯이 모두가 쉽게 접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그의 다음 구상은 패션과 음식의 접목이다. 카빌리아 회장은 “이탈리아 남부 사르데니아 섬에 있는 낡은 호텔을 하나 사서 레지던스식 호텔로 바꾸는 공사를 하고 있다”며 “호텔과 패션 매장, 여기에 레스토랑을 접목시킨 종합 라이프스타일 사업을 시작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한국 진출 계획을 묻자 그는 “아직 예정된 건 없지만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고 했다.

브레시아=민지혜 기자 spo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