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질 인도 러시아 남아프리카공화국 등 신흥 4개국 경제가 침체에 빠진 채 활로를 찾지 못하고 있다. 중국과 더불어 브릭스(BRICS)로 불리는 이들 국가는 금융위기 이후 세계 경기 회복을 주도해왔던 ‘성장엔진’이었다.

주로 원자재 수출에 의존해 성장해온 4개국은 글로벌 경제위기 때문에 수요가 급감하자 성장률이 떨어지고 있다. 뒤늦게 경제개혁을 추진하려 하지만 후진적 정치체제가 발목을 잡는다. 경기부양책은 물가 상승이 무서워 섣불리 쓰지 못한다. 파이낸셜타임스는 최근 “지난 10여년간 성장하던 신흥국 경제가 갑자기 무너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자원 의존형 경제

브라질은 철광석 수출 세계 1위다. 철광석과 콩 등 원자재 및 농산물 수출 비중이 48%에 이른다. 광물자원 생산 규모는 2001년 77억달러에서 지난해 390억달러로 5배 이상으로 늘었다. 자원 생산이 늘어나면서 제조업 비중은 크게 떨어졌다. 세계 철광석 수요의 60%를 차지하는 중국의 경제 상황이 최근 나빠지자 브라질은 직격탄을 맞았다.

세계 3위 철광석 수출국인 인도 역시 중국 등의 경기침체로 수출이 줄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인도 철광석 수출이 올해 75% 이상 줄 것”으로 내다봤다. 인도 경제일간 이코노믹타임스에 따르면 국내총생산(GDP)에서 제조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10% 정도다. 근로자 1인당 부가가치는 중국의 8분의 1 수준이다.

남아공 경제에서 금, 백금 등 광물자원이 차지하는 비중은 절대적이다. 수출의 33%, GDP의 20%를 차지하고, 광산업 고용은 약 50만명에 달한다. 광산이 모여 있는 루스텐버그 지역의 파업이 두 달째 이어지면서 경제가 크게 휘청이고 있다. 국제신용평가사 무디스는 지난달 27일 올해 남아공 성장률 전망치를 2.7%에서 1.5%로 낮추면서 신용등급을 A3에서 Baa1으로 한 단계 떨어뜨렸다.

세계 2위 원유 수출국인 러시아는 아직 높은 수출가격을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최근 셰일가스가 부상하면서 에너지값이 하락하자 러시아 경제에 대한 전망도 어두워지고 있다. 러시아 중앙은행은 지난 3일 “원유와 가스 수출에만 의존하면 지난해 800억달러 수준이던 경상수지 흑자가 2015년엔 적자로 돌아설 것”이라고 경고했다.

◆후진적인 정치환경

신흥국 정부도 원자재 수출을 대체할 만한 성장동력을 찾기 위해 제조업과 내수 키우기에 부심하고 있다. 하지만 후진적인 정치와 포퓰리즘이 발목을 잡고 있다. 인도는 최근 수년간 외국 기업의 자국 진출 허용, 석유 등 원자재 가격 현실화 등 경제개혁 정책을 추진해왔지만 번번이 좌절됐다. 정부로부터 각종 혜택을 받아온 산업계가 야당을 등에 업고 개혁 조치에 극렬하게 반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남아공 정부는 지난 8월 초 시작된 금·백금 광구 파업으로 수십명이 목숨을 잃고 국가 경제가 흔들리고 있는데도 이렇다 할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브라질에선 워낙 정치인들의 비리가 많아 사업을 할 때 “브라질 코스트(비용)를 고려해야 한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민주화가 진전되고 있지만 “정부가 헤알화(브라질 화폐) 가치를 인위적으로 낮춰 제조업을 지원하는 등 지나친 보호주의가 브라질 제조업의 경쟁력을 낮추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최근 미국의 양적완화에 대해 지우마 호세프 대통령이 직접 나서 비난한 것도 헤알화 가치 상승을 우려해서다.

러시아에서도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억압정치와 정치권의 비리에 반발하는 여론이 높아지고 있다. 연초 60%를 넘던 푸틴 대통령의 지지율은 40%대까지 떨어졌다. 정치가 후진적이다 보니 기업 환경도 안 좋다. 세계은행의 ‘기업하기 좋은 환경’ 순위에 따르면 남아공만 36위로 중위권일 뿐 러시아, 브라질, 인도는 각각 120위, 126위, 132위로 최하위권에 머물러 있다.

구조적인 개혁이 힘들 때 성장률을 끌어올리기 위해 쓸 수 있는 카드는 경기부양책이다. 하지만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 너무 많은 돈을 풀어 물가가 위험수위다. 쓸 돈도 거의 없다. 지난해 브라질을 제외한 인도, 남아공, 러시아는 모두 재정적자를 기록했다.

◆인플레이션 걱정 때문에

인도는 지난 2월 이후 물가상승률이 7%를 계속 넘어 정책목표인 연 5%를 크게 웃돌고 있다. 이 때문에 4월 3년 만에 기준금리를 인하한 뒤 추가적인 부양 조치를 내놓지 못하고 있다.

러시아는 지난달 경기침체에도 불구하고 기존 연 8%였던 기준금리를 연 8.25%로 올렸다. 더 이상 물가상승을 방치할 수 없다는 판단 때문이다. 러시아의 9월 물가상승률은 연중 최고 수준인 6.3%까지 높아졌다.

브라질 중앙은행은 최근 “올해 인플레 목표치인 연 4.7%를 연 5.2%로 수정한다”고 발표했다. 최근 약 1330억헤알(약 74조원)을 투자하겠다는 부양책을 발표했지만 시행에 난항을 겪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남아공도 물가상승률이 정부 목표 상한선인 연 6%에 근접하고 있어 부양책을 쓰는 데 부담을 느끼고 있다.

김형주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신흥국 물가만 놓고 보면 풀린 돈을 다시 모아야 하는 상황이지만 경기침체가 장기화되면서 각국 정부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남윤선 기자 inkling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