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하이닉스가 미국 반도체 설계회사 램버스에 지급해야 할 특허 관련 손해배상액이 크게 줄어들게 됐다. 2009년 SK하이닉스에 ‘3억9700만달러의 손해배상금을 내라’고 결정했던 미국 법원이 환송심에서 ‘합리적 수준의 로열티만 주라’고 다시 판결했기 때문이다.

램버스가 2000년부터 세계 D램 업체를 상대로 특허소송을 시작하면서 삼성전자 등 많은 기업들이 합의를 통해 수억달러를 지급했으나, 끝까지 버틴 SK하이닉스는 지출을 줄이면서 12년에 걸친 소송을 끝낼 수 있게 됐다.

◆11월께 로열티 결정될 수도

미 캘리포니아연방 북부 지방법원(새너제이)의 로널드 M 화이트 판사는 지난 21일(현지시간) 램버스와 SK하이닉스 간 특허침해 관련 환송심에서 SK하이닉스에 유리한 판결을 내렸다. 램버스가 증거를 불법 파기한 사실을 인정하며, 두 회사가 다음달까지 각각 ‘합리적이고 비차별적인(Reasonable & Non-Discriminatory) 로열티 조건’을 서면으로 낼 것을 명령했다.

SK하이닉스는 “합리적, 비차별적 로열티 조건은 삼성전자와 인피니언, 엘피다 등이 램버스에 내는 로열티를 기준으로 결정될 것으로 본다”며 “지급해야 할 손해배상금이 원심 때보다 크게 줄어들 것”이라고 예상했다.

SK하이닉스는 2009년 1심에서 램버스에 3억9700만달러의 손해배상금과 미국 매출의 1~4.25%에 이르는 로열티를 지급하라는 판결을 받은 뒤 항소했다. 이 항소가 지난해 5월 연방법원에서 받아들여져 1심 판결은 파기환송됐고, 환송심에서 유리한 판결을 얻어냈다.

SK하이닉스는 램버스와의 소송 등에 대비해 4100억원 규모의 충당금을 쌓았다. 오는 11월께 로열티 수준이 합의되면 상당액이 환입될 가능성도 있다. 삼성전자는 2010년 램버스에 7억달러를 주고 특허계약을 맺었다.

◆배심원 평결 뒤집혀

이번 소송은 애플과 삼성전자 간 특허소송과 유사하다. 애플처럼 캘리포니아에 본사를 둔 램버스가 2000년 하이닉스에 특허소송을 제기하자 캘리포니아 지역 배심원들은 일방적으로 램버스의 손을 들어줬다.

배심원들은 2006~2008년 진행된 소송 공판의 1차 평결 때 하이닉스의 소송 무효 요청을 기각했다. 이어 2차 때 하이닉스가 3억달러를 지급할 것을 결정했으며, 3차 때는 램버스가 반독점법을 위반하지 않았다고 평결했다. 같은 내용의 특허소송에서 미국 마이크론은 램버스에 승소했지만(2009년 2월), SK하이닉스는 패소(2009년 3월)했다.

하지만 SK하이닉스는 램버스가 특허 관련 자료를 불법 파기했다는 점을 끝까지 주장, 결국 배심원이 없는 연방법원 항소심과 환송심에서 연달아 승리했다.

김현석 기자 reali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