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주장 중 절반은 무죄, 절반은 유죄지만 김승연 회장은 실형.’

서울서부지법 형사12부(부장판사 서경환)가 16일 내린 한화그룹 사건 1심 판결의 요지다. 2010년 9월 서울서부지검의 그룹 본사 압수수색으로 시작돼 ‘별건수사’ ‘표적수사’ 등의 논란 속에서 약 2년 동안 재계의 이목을 집중시킨 사건에서 법원은 결국 대기업 총수의 법정구속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대기업 총수 이례적 법정구속

재판부는 김 회장에게 징역 4년의 실형과 벌금 51억원을 선고하고 이날 법정구속했다. 현직 대기업 총수를 법정구속한 것은 이례적이다. 재판부는 우선 “대법원 양형위원회에서 2009년 도입한 양형 기준을 철저하게 준수했다”고 이유를 밝혔다.

양형위 권고 형량의 범위(징역 5~8년)의 하한에서 1년을 감경해 징역 4년으로 선고형을 정했다는 것. 또 “범행의 최대 수혜자이면서도 ‘실무자가 한 일’이라고 떠넘기며 반성의 기색이 없기 때문”이라는 설명도 덧붙였다. △한유통, 웰롭 등 차명회사 부당 지원으로 그룹 계열사에 2883억원 피해를 입힌 혐의 △차명계좌 주식 거래로 양도소득세 15억원 포탈 △계열사가 보유한 동일석유 주식을 누나에게 저가 양도해 141억원 손해 발생 등의 혐의에 대해 유죄를 인정했다.

재판부는 이와 함께 검찰이 기소한 대부분 혐의에서 김 회장이 공모했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그룹이 김 회장을 절대적 충성의 대상이자 신의 경지인 ‘CM’(체어맨)으로 호칭하는 등 상명하복 보고·지휘 체계를 갖춘 상황에서 실무진이 독단으로 일을 처리했다고 볼 수 없다”고 말했다.

2007년 김 회장이 폭력 사건에 연루돼 구치소에 수감됐을 당시 면회 접견부에 김 회장이 임원에게 “주식을 잘 관리하라” “천안백화점 부지를 알아보라”고 당부하는 등 경영 관련 지시를 내린 사실, 그룹 내부 문건에 김 회장이 계열사의 세세한 문제점까지 날카롭게 지적한 점이 기록된 사실 등 간접증거를 감안한 판단이다.

법정구속 결정에 대해 김 회장 측 변호인은 “검찰 공소사실 중 큰 부분은 무죄 판결이 났고, 반성의 기색이 없는 게 아니라 무죄추정의 원칙에 따라 법정에서 사실관계를 다툰 것”이라며 “경제인이 도망의 우려가 있는지 의문”이라고 반박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절반은 무죄, 절반은 유죄

재판부는 “조금이라도 합리적 의심의 여지가 있으면 무죄로 판단했다”고 강조했다. 그럼에도 검찰의 ‘먼지털이식 수사’에 혐의가 눈덩이처럼 불어나면서 유무죄가 반반 정도의 비중을 차지했다.

애초 수사의 단초가 된 비자금이나 정·관계 로비는 재판에서 언급도 되지 않았다.

재판부는 김 회장의 가족이 관련된 한유통, 웰롭, 부평판지에 대해 그룹 계열사들이 9000억원 상당의 지급보증 등 부당 지원을 했다는 혐의를 전부 무죄 판단했다. 계열사들의 피해가 없었기 때문이다. 2005년 기준 부채가 각각 2000억원대, 1000억원대에 이른 한유통과 웰롭을 계열사 자금으로 유상증자하게 해 부채를 줄인 혐의도 역시 무죄 판결이 났다.

계열사인 한화S&C 주식이 주당 약 23만원 가치가 있었는데도 주당 약 5100원으로 김 회장의 장남 동관씨에게 넘긴 혐의에 대해서도 재판부는 한화 측 손을 들어줬다. “이후 그룹의 일감 몰아주기로 한화S&C 주식 가치가 상승하는 등 윤리적 비난의 소지는 있지만 당시 산정한 주가를 문제삼기는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김 회장의 누나가 소유한 한익스프레스에 웰로스를 저가 매도한 혐의 △김 회장 개인 재산을 관리하는 직원들에게 계열사들이 임금을 지급한 혐의 △한화국토개발이 김 회장 장남 소유 목장을 거짓 임차해 17억원을 지급한 혐의 △한익스프레스 주가 조작 등으로 재무팀장이 10억원대 시세·양도차익을 얻은 혐의 등도 무죄로 결론났다.

한화 측은 “경영상의 판단이라든지 성공한 구조조정이라는 주장이 모두 배척됐다”며 “대법원 양형 기준이 소급 적용된 점 등 다퉈볼 점이 많다”며 항소할 뜻을 분명히 했다.

이고운/김우섭 기자 cca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