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계부채發 디플레 진입] 1억5천만원 맡겨 年 418만원…이자 생활자도 "죽을 맛"
평생 모은 예금 1억5000만원을 은행에 맡겨 이자로 살아가는 김모씨(77)는 최근 몇 년 새 이자소득이 크게 줄어들어 고민이 많다. 그는 금융위기 전까지 연 5~6% 이자를 받을 수 있었다. 세후 연 760만원 정도면 자녀들이 주는 용돈과 합해 그럭저럭 생계를 꾸려갈 수 있었다. 하지만 최근에는 거래 은행의 정기예금 금리가 연 3.3%에 불과하다. 세금을 제하고 나면 연 418만원밖에 받지 못하는 셈이다. 그는 뒤늦게 부동산이나 주식 등 새 투자수단으로 갈아타기도 어려워 0.01%포인트라도 금리가 높은 곳을 찾아다니고 있다.

실질금리가 4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지만 저금리 현상이 장기화되면서 예금자들이 겪는 고통도 커지고 있다. 금리수준 자체가 낮으면 물가가 아무리 떨어져도 소용이 없기 때문이다. 여기에 2010년부터 2년여간 예금자들 중 상당수는 예금금리가 물가상승률에도 미치지 못하는 실질금리 마이너스 시대를 겪어야 했다. 홍춘욱 국민은행 수석이코노미스트는 “금융사에 목돈을 맡겨봐야 물가상승률이 더 높아 돈의 실제 가치가 감소하는 시기였다”고 설명했다. 은행이 새로 받은 예금 등 저축성 수신의 평균 금리가 물가상승률보다 0.9%포인트 낮은 시기(2011년 7월)도 있었다.

금리가 낮아지면 예금 이자수입에 의존하는 이들은 당장 수입감소를 걱정해야 한다. 이창선 LG경제연구원 금융연구실장은 “근로소득이 없는 고령자들은 예금 의존도가 높아 저금리가 지속되면 수입이 줄어 어려움에 처하게 된다”고 말했다.

박미정 농협은행 강남센터 프라이빗뱅킹(PB)팀장은 “사망한 남편이 물려준 재산을 예금에 넣어두고 살아가는 할머니 고객들 중에는 이자수입 감소로 마음고생을 하는 이들이 많다”고 전했다. 그는 “최근 한 달 새 정기예금 만기가 도래한 경우 재가입 금리가 1%포인트까지 하락한 경우도 있었다”고 말했다.

최근 한국은행이 기준금리 인하 추세로 돌아서면서 당분간 저금리 기조는 지속될 전망이다. 오석태 한국스탠다드차타드(SC)은행 이코노미스트는 “기준금리가 앞으로 두 차례 정도 더 떨어질 것”이라며 “이 경우 은행 정기예금 금리도 연 2%대까지 낮아질 수 있다”고 내다봤다. 예컨대 우리은행의 대표상품인 키위정기예금 금리는 현재 최고 연 3.4%인데 앞으로 한은 기준금리가 0.5%포인트 낮아지면 이 상품의 금리도 연 3% 미만으로 떨어질 수 있다는 얘기다. 홍 이코노미스트는 “물가상승률이 계속 낮은 수준을 유지하면 예금자도 상대적으로 덜 피해를 볼 수 있겠지만, 한은의 금리인하가 이어지고 환율 약세가 유지된다면 다시 실질금리 마이너스 시대가 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이상은/김일규 기자 se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