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고심 끝에 소득세법상의 소득세 과표 구간과 세율 변경을 이번 세법개정안에 담지 않은 표면적인 이유는 지난해 최고세율 구간(3억원 초과, 38%)이 신설된 후 1년 만에 다시 바꾸는 것이 적절치 않다는 것이다. 하지만 실질적으로는 대선을 앞두고 소득세법 과표 및 세율 변경이 정치권의 주요 선거전략으로 대두되고 있는 상황에서 정부가 자체 방안을 제시하는 데 부담을 느꼈기 때문이라는 게 대체적인 관측이다.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도 “현 상황에서 몇 년 뒤의 정부 조세개편방향까지 제시하는 것이 무리라는 판단을 했다”며 “미세조정 대안은 갖고 있는 만큼 국회 심사 과정에서 필요하다면 대안을 제시하고 논의할 수 있는 준비가 돼 있다”고 설명했다. 사실상 공을 국회로 넘긴 것이다.

◆소득세 구간 조정 포기

기획재정부는 올 들어 소득세 과표 구간의 조정 필요성을 지속적으로 언급해 왔다. 현재의 소득세법 상 과표구간이 경제여건 변화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1994년 제정된 △과표 1000만원 이하(세율 10%) △4000만원 이하(20%) △8000만원 이하(30%) △8000만원 초과(40%) 등 4단계의 소득세 과표 구간의 틀은 20년 가까이 유지돼왔다. 지난해 3억원 초과 구간이 신설되고 1200만원 이하(6%), 4600만원 이하(15%), 8800만원 이하(24%), 3억원 이하(35%), 3억원 초과(38%) 등으로 개편됐지만 기본 틀은 1994년과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정부는 이 같은 구조가 그동안 한국의 국내총생산(GDP)이 2배 이상 늘어나는 등의 경제여건 변화를 능동적으로 수용하지 못하고 있다고 판단해왔다.


새누리당, 민주통합당 등 정치권도 같은 논리를 내세워 소득세 과표 구간 조정을 주장해왔다. 하지만 정부는 이번에 끝내 스스로 바람직하다고 여겨온 소득세법 개정안을 내놓지 못했다. 국회 법안통과의 칼자루를 쥐고 있는 정치권과의 이견이 컸기 때문이다.

정치권은 소득 수준이 높아지면서 돈을 많이 버는 사람이 늘었으니 고소득자에 대한 세금을 더 거둘 수 있도록 최고세율 구간을 조정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반면 정부는 소득 수준이 높아진 만큼 중간 소득층의 소득세 구간을 상향 조정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정부는 소득세 구간을 상향 조정함으로써 발생하는 세수 감소를 각종 비과세·감면 조치 축소를 통해 보전받을 수 있다고 생각해왔다.

하지만 여야가 비과세·감면 대폭 축소에 반대하면서 정부의 소득세 구간조정 계획은 사실상 무용지물이 됐다. 이에 따라 비과세·감면대상 201개 항목 중 일몰도래분이 103개에 달하지만 정부는 이번에 24개만 폐지하기로 했다. 5개 항목은 신설되기까지 했다.

박 장관은 “세율, 과표구간, 근로소득공제, 세액공제 등 4가지를 모두 고려해 소득세 과표구간 시뮬레이션을 돌려봤지만 마땅한 방안을 도출하지 못했다”며 “대선을 앞둔 정치권이 비과세 감면조항의 대폭적인 수정을 받아들이겠느냐는 실효성 차원의 의문도 들었다”고 토로했다.

◆소득세 구간 조정 가능성 높아

박 장관은 소득세 구간을 현행대로 유지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설명하면서 심리학의 ‘앵커링 효과(anchoring effect)’를 거론했다. 일단 선박이 닻을 내리면 움직이기 힘든 것처럼 현재의 상태를 벗어나는 데 상당한 어려움이 따른다는 점을 지적한 것이다.

하지만 정부의 움직임과 별개로 새누리당과 민주당 모두 소득세법 개정을 추진하고 있어 소득세 구간은 어떤 형태로든 조정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민주당은 최근 소득세 최고세율 38%를 적용하는 구간을 현행 ‘3억원 초과’에서 ‘1억5000만원 초과’로 낮추는 세법개정안을 당론으로 확정했다. 민주당 안대로 시행될 경우 지난해 소득 기준으로 최고세율 대상자 수는 3만1000명에서 13만9000명으로 늘어나고 세수도 6359억원에서 1조150억원으로 대폭 늘어나게 된다.

정부와 새누리당도 8일 오전 당정협의를 열고 머리를 맞댔지만 소득세법 개정안과 관련된 합의를 이끌어내지 못했다. 새누리당은 정부와 협의가 안 될 경우 독자적인 안을 만들어 법안을 상정한다는 계획이다. 이한구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최고세율을 수정할지, 구간만 변경할지 등 다양한 안을 놓고 연구용역을 맡겼고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며 “10년 이상 현 과표구간이 유지돼 왔기 때문에 소득세 구간 조정 등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임원기 기자 wonki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