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권이 바뀔 때마다 정책이 바뀌어선 안된다. 모든 정책은 산업을 지원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

영국 산업계 원로로 존경받는 존 파커 경은 거침이 없었다. 최근 영국 일간 텔레그래프와 가진 인터뷰에서 정부와 정치권을 향해 쓴소리를 쏟아냈다.

그럴 만도 했다. 올해 70세인 파커 경은 1958년 18세에 선박업체 할랜드앤드울프에 기술직 도제로 입사해 25년 뒤 최고경영자(CEO) 자리에 올랐다. 이어 영국 100대 기업 중 5개의 CEO를 지냈다. 현재 자원개발업체인 앵글로아메리칸 대표, 왕립엔지니어링아카데미 회장 등을 맡고 있다. 기업 경영을 통해 국가경제에 기여한 공로로 2001년에는 엘리자베스 2세 여왕으로부터 기사 작위까지 받았다.

3분기 연속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할 정도로 암울한 영국 경제를 위해 제시한 그의 해법은 현장에서 잔뼈가 굵은 경영인다웠다. 그는 유로존 재정위기보다 더 무서운 게 현장 기술자의 부족이라고 지적했다. 영국에서는 10년 내 기술자 200만명의 은퇴가 예고돼 있다. 젊은이들은 일확천금을 좇아 금융계로 떠나는 추세다.

파커 경은 “과거 정부들이 제조업을 우대할 것이라는 ‘신호’를 주지 않았기 때문에 이런 현상이 나타났다”고 따끔하게 일침을 놓았다. 그는 제조업 지원에는 정권, 정당의 의견차이가 있을 수 없다고 역설했다.

파커 경은 “(제조업 지원이라는) 씨앗을 심고 6개월 뒤 열매가 안 맺혔다고 뽑아버리면 그 자체가 재앙”이라며 “국가는 제조업을 지원하고 있고, 지원할 것이라는 청사진을 보여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그의 고언은 대기업의 중요성과 역할론으로 자연스레 이어졌다. “산업을 움직이는 큰 엔진(대기업)이 있어야 뒤따르는 서플라이 체인(부품 공급업체)을 이끌 수 있다”는 것이다. “영국 경제가 그나마 버티고 있는 건 에어버스, 롤스로이스 등 대형 제조업체 덕분”이라고도 했다.

지지부진한 경제 상황은 영국이나 한국이나 비슷해 보인다. 다른 게 있다면 12월 대선을 앞두고 기업인 군기 잡기와 기업 때리기 경쟁을 벌이면서 성장보다 복지정책 타령만 하고 있는 한국의 정치권이다. 정부는 못 이기는 척 정치권과 어물쩍 손발을 맞추고 있다. 이런 한국에 파커 경의 쓴소리는 결코 울림이 작지 않아 보인다.

남윤선 국제부 기자 inkling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