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욕과 배신…담합의 세계
공정거래위원회가 양도성 예금증서(CD) 금리 담합 혐의를 조사하면서 금융계가 희대의 스캔들에 휘말리고 있다. CD 금리는 일반인들에겐 생소한 금융 용어지만 무려 324조원의 은행권 대출과 4000조원 이상의 파생상품 금리와 연계돼 있는 단기 지표다. 만약 금융사들이 담합을 통해 금리를 인위적으로 조작했다는 혐의가 사실로 드러날 경우 시장에 닥칠 충격과 혼란은 상상하기조차 어려울 정도다. 현재로서는 담합 여부를 속단하기 어렵다. 공정위 스스로도 극도로 말을 아끼고 있다. 세간에서는 “공정위가 헛다리를 짚었다”는 얘기와 “이번에 금융계가 제대로 걸렸다”는 관측이 교차하고 있다.

탐욕과 배신…담합의 세계
공정거래법상 ‘담합(談合)’이란 2인 이상의 사업자가 시장에서 경쟁을 통해 결정돼야 할 판매·입찰가격, 생산량 등을 공동으로 결정하는 것을 뜻한다. 독일어로 사업자 단체·모임을 뜻하는 카르텔(cartel)이 전 세계 공통어로 쓰이며 우리나라에서는 일본말인 ‘당고’로 잘 알려져 있다.

담합은 자본주의 제1의 공적이다. 시장경제의 근간인 경쟁을 배제하고 타인이 가져가야 할 이득을 사취하기 때문이다. 담합은 욕망과 탐욕의 경계를 아슬아슬하게 넘나든다. 탐욕은 욕망의 변이(變異)다. 최적의 이익 창출 노력이 일정 선을 넘어선 것이다. 그 비용은 최종적으로 소비자들에게 돌아간다. 때문에 전 세계 모든 국가들은 담합 행위를 중대 경제범죄로 규정하고 제재한다. 담합의 폐해는 경제의 글로벌화, 산업의 독과점화가 심해지면서 업종과 시장을 불문하는 양상이다.

담합의 역사는 인류 상업의 역사와 궤를 같이한다. 13세기 초 베네치아 상인들은 십자군 전쟁의 틈바구니에서 강력한 카르텔을 형성, 동방무역의 패권을 거머쥐었다. 또 15세기 유럽의 향신료 값이 천정부지로 치솟은 것은 유통을 맡고 있던 아랍 상인들의 담합 때문이었다. 그들은 높은 가격을 유지하기 위해 생산지를 철저히 비밀에 부치기도 했다. 근대 독일의 상인 길드와 수공업 길드 역시 폐쇄적인 조직 운영을 통해 생산 물량과 가격을 마음대로 주물렀다. 이 같은 담합을 규제하기 위한 최초의 시도는 1215년 제정된 영국의 대헌장(마그나카르타)이었다. 상인들의 자유로운 활동을 보장하고 독점의 폐해를 명문화한 것.

산업혁명의 후발주자인 미국에서는 1890년 제정된 ‘셔먼 트러스트법’이 반담합법의 효시다. 당시 록펠러, 카네기 등 석유와 철강 재벌들은 독점적 파워를 이용해 기업 간 경쟁을 배제하고 상품 가격을 멋대로 인상하는 등 횡포를 부렸다.

하지만 현대사회에서 담합은 장기간 지속되기 어렵다. 가격과 상품 정보가 범람하는 개방형 경제 시스템과 소비자들의 각성, 경쟁 당국의 강력한 근절 의지가 동시에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내든 해외든 대개 담합이 깨지는 결정적 모멘텀은 카르텔 내부의 배신이다.

그동안 공정위가 적발한 사건 중 가장 오랫동안 담합을 유지해온 곳은 비료업계다. 남해화학, 동부, 삼성정밀화학 등 13개 화학비료 업체는 1995년부터 2010년까지 16년간 상호 협의를 거쳐 농협중앙회 비료 입찰가를 정했다. 하지만 이처럼 끈끈하게 이어져오던 카르텔도 업계 1, 2위인 남해화학과 동부의 자진신고로 허무하게 무너졌다. 공정위 조사관들이 들이닥치자 리니언시(자진신고를 대가로 과징금을 감면받는 것) 혜택을 노린 이들 업체가 먼저 손을 들고 나선 것.

정호열 성균관대 로스쿨 교수(전 공정거래위원장)는 “한때 손쉽게 수익을 올릴 수는 있겠지만 결국 내부 배신으로 깨지는 게 담합의 생리”라며 “처음부터 비도덕적인 동기로 야합한 것인 만큼 헤어질 때도 의리 같은 것은 찾아볼 수 없다”고 말했다.

박신영 기자 nyus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