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기업들이 사업비 2조원 이상의 해외 프로젝트를 수주할 경우 주요 정책금융기관들이 자금을 공동 지원하는 방안을 추진한다. 글로벌 경기 침체 장기화에 대비해 국내 기업들의 해외 수주를 확대하고 정책금융기관 또는 기업 간 과당 경쟁을 막기 위해서다.

12일 금융권에 따르면 산업은행 수출입은행 정책금융공사 무역보험공사 등 4개 기관은 최근 정책금융기관 실무협의회를 통해 이 같은 내용을 골자로 한 ‘해외 프로젝트 수주 확대를 위한 정책금융기관 간 공동 적용 업무 가이드라인’에 합의했다.

강만수 산은금융그룹 회장과 김용환 수출입은행장, 진영욱 정책금융공사 사장, 조계륭 무역보험공사 사장 등 정책금융기관 수장들이 다음달에 모여 이를 확정할 예정이다.

정책금융기관들이 공동 지원하는 대상 사업은 국내 기업(해외 현지 법인 포함)이 참여하는 해외 프로젝트로 ‘수출신용기관(수은·무보) 지원액이 10억달러(약 1조1500억원) 이상’이거나 ‘총 사업비가 20억달러(약 2조3000억원) 이상’인 경우로 결정했다. 총 사업비는 국내 기업들이 사업주로 참여하는 투자개발형 사업의 경우 한국 측 부담 사업비 기준이며, EPC(일괄도급 방식) 계약자로 참여하는 수출거래형 사업은 당해 EPC 계약금액을 기준으로 할 방침이다.

정책금융기관들은 기업들의 해외 프로젝트 수주 때 이 같은 금융지원뿐만 아니라 대상 사업에 대한 정보를 공유하고 사업 적격성, 지원 필요성 등도 함께 검토하기로 합의했다. 정책금융기관뿐만 아니라 시중은행 및 증권사 등 민간 금융회사의 참여를 허용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이번 방안은 지난 3월 비상경제대책회의 때 논의한 ‘제2 중동 붐’ 대비 해외 프로젝트 수주 활성화 방안의 후속 조치로 마련된 것으로 전해졌다.

정책금융기관 실무협의회 관계자는 “중국과 일본 등 다른 경쟁 국가들은 외환보유액까지 동원해 자국 기업의 해외 프로젝트 수주를 돕고 있지만, 우리는 기업들이 금융기관들로부터 자금을 끌어모으는 데 시간을 보내면서 계약을 놓치는 경우가 많다”며 “정책금융기관들이 신속한 의사결정을 통해 금융 지원에 나서면 기업들의 해외 프로젝트 수주도 크게 늘릴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책금융기관 간 ‘신사협정’의 의미도 담겨 있다. 금융권 관계자는 “그동안 기관마다 해외 프로젝트 파이낸싱(PF)이나 투자은행(IB) 업무를 확대하는 과정에서 서로 업무영역을 놓고 신경전이 끊이지 않았다”며 “때문에 이번 공동 지원 방안은 해외 시장 진출을 놓고 기관들 사이에 신사협정을 맺은 측면이 강하다”고 말했다.

장창민 기자 cmj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