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켓인사이트 7월4일 오전 9시14분 보도


영국 웨섹스주 크롤리 공단에 위치한 두산파워시스템(DPS). 이곳 마케팅팀 직원들은 오는 19일 잉글랜드 로열 리덤 앤드 세인트 앤스GC에서 열리는 메이저 골프대회 ‘디 오픈’ 챔피언십(일명 브리티시 오픈)을 앞두고 준비에 분주했다. 두산은 디 오픈 공식 후원사 중 한 곳이다.

이안 토킹턴 밥콕 엔지니어링팀 부장은 회사가 두산에 피인수된 후 2007년 디 오픈 티박스 뒤로 큼지막히 보이는 ‘DOOSAN’ 로고를 처음 접했을 때의 놀라움과 반가움을 잊을 수 없다. 두산은 2006년 미쓰이그룹으로부터 영국의 산업용 보일러 업체 밥콕을 사들이고, 2009년 체코의 터빈업체 스코다파워, 2011년 독일 발전설비 업체 렌체스를 인수해 지난해 DPS로 통합했다. 당시만 해도 두산은 생소한 한국 기업이었다. 그는 “일본 미쓰이그룹 산하 시절 사업 부진에 시달렸던 직원들은 당시 또다시 아시아의 잘 안 알려진 회사가 주인이 되자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다”며 “지금은 두산의 일원이라는 자부심이 누구보다 높다”고 말했다.

○M&A 성공 키워드, ‘화학적 결합’

전문가들은 크로스보더(국경 간) 인수·합병(M&A)의 성공 여부를 가늠하는 가장 큰 변수를 ‘인수 후 통합·관리(PMI)’로 꼽는다. 문화·지역적 편차를 극복하고 화학적 결합을 통해 시너지를 내려면 인수 과정 이상의 노력과 비용을 투입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DPS는 국내 투자은행(IB) 전문가들 사이에서 국내 기업이 다른 국가, 다른 업종의 기업을 인수해 화학적 결합에 성공한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밥콕은 인수 첫해인 2007년 4억7200만파운드(약 8418억원)이던 매출이 2010년 8억5600만파운드(약 1조5267억원)로 급증했다. 3% 남짓이던 영업이익률은 16.3%로 상승했다.

○반년간의 ‘친밀화 프로그램’

두산은 밥콕 인수 후 기존 경영진을 유지하고 최고전략책임자(CSO)만 본사에서 파견했다. 인수 후 재무라인 장악을 위해 최고재무책임자(CFO)를 보내는 관행을 깨뜨렸다. 목진원 DPS 상무는 “전리품을 가져가려는 점령군이 아니라 기술과 인력을 더해 상생하려 한다는 인식을 심어주는 것이 PMI의 첫 번째 단계”라고 설명했다.

밥콕의 PMI는 6개월간 장기 프로젝트를 통해 비전을 공유하는 ‘두산 친밀화(familiarization) 프로그램’을 통해 진행됐다. 이 기간 밥콕 경영진과 부장급 이상 간부들은 전원 1주일여간 한국의 두산중공업 창원공장을 방문해 연수를 받았다.

제레미 데이 DPS 인사팀 부장은 “한국을 모르던 임직원들이 창원 공단의 첨단 시설과 효율적인 프로세스에 놀랐다”며 “연수 후 가슴에 달린 두산 배지를 자랑스러워했다”고 말했다. 그는 “미쓰이 산하 시절 13년간은 일본을 방문해본 적이 없다”고 털어놨다.

특히 엔지니어들은 한국에 연간 수차례 방문하며 협업을 모색했고, 실적으로 이어졌다. 밥콕은 두산에 인수되자마자 두산중공업 라이선스로 입찰에 참여해 700메가짜리 대형 보일러 프로젝트를 수주했다.

○‘같이 일하러 온’ 파견 임직원

PMI가 원활히 이뤄지기 위해서는 파견 임직원들의 역할도 크다. 두산은 PMI 담당 인력을 따로 현지에 보내지 않았다. 국내에서 파견된 임직원들은 밥콕에서 자기 업무를 하며 부수적으로 PMI 역할을 맡았다. 관리 감독하러 온 게 아니라 현지 직원들과 일하러 왔다는 인상을 심어주기 위해서였다.

이들은 문화적 차이를 줄이는 데 핵심 역할을 했다. 김병만 DPS 부장은 “한국 고객사에서 아침 9시에 제안서를 요청하면 영국에서는 오후 4시가 된다”며 “정시에 퇴근하는 현지 직원들의 문화를 존중해 한국에서 파견된 직원들이 밤 늦게까지 남아 제안서를 만드는 경우도 많다”고 말했다.

런던=고경봉 기자 kgb@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