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거래위원회가 1일 공개한 상호출자제한집단 63개 그룹의 주식 소유현황과 소유지분도는 복잡하고 방대한 출자구조를 입체적으로 그려냈을 뿐, 그 자체로 특별히 새로울 것은 없다. 공정위는 이전에도 대규모 기업집단 정보공개시스템 ‘오프니(OPNI)’를 통해 관련 내용을 공개해왔다.

하지만 공정위가 63개 그룹 소속 전 계열사들을 대상으로 향후 채무구조와 내부거래 등 민감한 기업정보들을 추가로 조사해 공개하겠다고 밝히고 있어 재계의 긴장감은 날로 높아지고 있다. 따라서 이번 조사는 단순히 출자구조에 대한 현황 파악 차원이 아니라 향후 보다 강도 높은 기업 지배구조정책 출현을 예고하는 신호탄 성격을 띠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조사 폭탄’ 예고

공정위는 특히 이번 자료를 토대로 향후 주요 그룹에 대한 부당내부거래 조사를 강화한다는 방침이어서 가뜩이나 유럽 위기에 따른 수출감소와 실적부진에 시달리는 기업들로서는 전대미문의 ‘조사 태풍’과 맞닥뜨릴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게 됐다.

하지만 재계가 이보다 훨씬 우려스러워하는 것은 이 같은 릴레이 조사가 최근 대선을 앞두고 정치권에 일고 있는 ‘경제민주화’ 구호와 결합할 가능성이다. 여야 정치권이 서민층의 표심을 자극하기 위해 ‘재벌개혁=경제민주화’라는 등식을 선거전략으로 활용하는 상황에서 대기업 집단의 온갖 정보들이 여과없이 그대로 노출될 경우 대중들의 반기업 정서가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될 수도 있다는 것이 재계의 위기감이다.

여기에 대기업 오너를 비롯한 총수 일가가 극히 낮은 지분율로 수십, 수백조원짜리 자산을 가진 그룹을 좌지우지하고 있다는 비판이 가세할 수도 있다.

공정위가 겨냥하고 있는 것도 바로 이 같은 여론의 흐름이다. 공정위는 출자총액제한제나 순환출자 등 정치권 일각에서 제기하고 있는 기업 지배구조 규제에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그런 사전적 규제로는 실효성을 거둘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공연히 논란만 야기할 뿐이라는 판단에서다. 공정위는 그 대신에 일련의 조사와 발표를 통해 대기업들에 대한 압박을 가한 뒤 기업들이 스스로 지배구조 개편에 나서도록 하겠다는 심산이다.

재계 관계자는 “기업의 시각에서 보면 공정위가 고도의 심리전과 여론전을 펼치는 전술을 구사하고 있는 셈”이라고 말했다.


◆정부가 왜 지배구조 개입하나

공정위가 임의로 바람직한 지배구조를 설정해놓고 기업들을 그 방향으로 유인할 수 있느냐에 대해 재계는 물론 학계에서조차 비판적 시각이 많다. 지배구조는 기업이나 기업주가 선택하는 것이고 경영전략의 산물이라는 판단에서다.

신석훈 한국경제연구원 박사는 “지배구조로 인해 문제가 발생하면 이에 대해 논의를 하는 것이 맞지만 처음부터 바람직한 지배구조의 모습을 결정하는 것은 과도한 간섭”이라고 말했다.

공정위 스스로도 이번에 발표된 기업 지배구조에 대해 ‘적절한’ 판단을 하기가 어렵다는 점을 자료에 적고 있다. 공정위 관계자는 “총수 일가가 적은 지분율로 계열사의 경영권을 좌우하게 된 연유가 정확하게 어떤 것인지 설명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총수가 있는 기업집단은 언제든지 중소기업을 압박하고 사익을 위해 회사를 희생시킬 수 있다”는 ‘예단’을 제시하고 있다.

민경국 강원대 교수는 “공정위는 객관적인 기준으로 지분도 현황을 내놨다고 하면서도 자료에 이 같은 주석을 달아 결국 국민들 사이에 반기업 정서가 퍼지도록 하는 부작용을 일으키고 있다”고 비판했다. 대한상의 관계자도 “공정위가 반기업 정서에 편승하면 불필요한 논쟁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고 말했다.

■ 환상형 순환출자

대기업집단이 지배구조를 유지하기 위한 방법 중 하나로 계열회사 간 출자구조가 ‘A사→B사→C사→A사’와 같이 원 모양(환상형)으로 순환하는 구조를 띤다. 공정거래법이 금지한 상호출자를 피하면서도 계열사를 늘릴 수 있다.

■ 내부지분율

기업의 전체 발행주식 중 오너(총수)와 그 친족은 물론 임원, 계열사 등이 보유한 지분이 차지하는 비중이다. 자사주와 소속 기업집단이 설립한 비영리 법인의 보유지분도 포함된다.

박신영 기자 nyus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