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현장 긴급진단] 수출기업ㆍ재래시장 '아우성'인데…정부 "지표 괜찮다" 타령만
김정관 기획재정부 경제분석과장은 최근 수출 추이를 지켜보다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달 들어 지난 20일까지 수출금액이 310억달러를 넘어서면서 전년 동기 대비 4.5%가량 늘어났기 때문이다. 월간 수출은 대개 월초부터 20일까지는 마이너스 성장을 하다가 월말에 증가세로 돌아서는 게 일반적인 흐름이다. 게다가 최근 수출 실적도 그다지 좋지 않았다. 올 3월 이후 지난달까지 3개월 연속 마이너스를 기록한 것. 2009년 10월 이후 처음 있는 일이었다. 김 과장은 “최근 글로벌 경기 둔화와는 상반되는 흐름이 나타나 내용을 유심히 들여다보고 있다”며 “기업들이 수출시장 위축을 점유율 확대로 상쇄하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지표와 체감 경기의 괴리

경제의 컨트롤타워라고 할 수 있는 재정부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은 물론 재래시장에 이르기까지 모두 경기가 나쁘다고 아우성치는데도 지표상으로는 ‘아직은 버틸 만하다’는 결과가 나오는 것이다.

위기 상황임을 감안해 기업들의 전력 사용량이나 백화점 대형마트를 비롯한 유통업체의 판매 추이 등 실시간 경기 흐름을 보여주는 지표를 신속하게 업데이트하고 있지만 아직 특이 징후가 나타나지 않고 있다는 얘기다. 오는 29일 발표되는 5월 산업활동 동향도 전월 대비 증가세를 유지할 것으로 재정부는 보고 있다.

금융시장도 아직은 견조하게 버티고 있다. 스위스중앙은행(SNB)은 최근까지 우리나라 국고채를 매입, 당초 우리 정부와 약정한 한도를 채웠다. SNB의 투자 포트폴리오는 보수적으로 정평이 나 있다. 그만큼 우리나라 국고채가 안전자산으로 평가받는다는 의미다.

환율 움직임도 비교적 안정적이다. 올 들어 이달 15일까지 달러화 대비 원화 환율의 하루 변동폭은 평균 4원80전에 불과하다. 그리스 사태가 본격화된 이달 들어서도 환율은 1일 1179원에서 22일 1159원으로 오히려 20원 떨어졌다.

○민간 “정부 지나치게 낙관적” 경고

하지만 많은 전문가들은 정부가 경기에 후행하는 지표 분석에만 매달려 선제적 대응 타이밍을 놓치고 있다는 비판을 내놓았다. 정부 내에서도 가계대출 부실화와 부동산시장 침체를 해결하기 위한 즉각적인 대책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금융당국을 중심으로 나오고 있다.

한국은행도 올 들어 수출기업의 상품교역 조건이 갈수록 나빠지고 있다며 경고를 보내고 있다. 1분기 순상품교역조건지수는 75.0으로 전년 동기 대비 6.5포인트 하락, 2010년 3분기(87.3) 이후 1년6개월 연속 떨어졌다. 이는 또 글로벌 금융위기가 한창이던 2008년 4분기(75.1)보다도 나빠진 수치다. 순상품교역지수는 2005년(100)을 기준으로 한 단위의 수출대금으로 수입할 수 있는 상품의 양을 말한다. 환율 상승과 공급 과잉에 따른 가격 하락으로 수출기업들의 채산성이 그만큼 나빠지고 있는 것이다. 이근태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세계경기 둔화가 전기전자 화학 등 우리 주력 산업을 중심으로 나타나고 있다”고 우려했다.

최고경영자(CEO)들도 경기가 장기 침체 국면에 접어들 것으로 보고 있다. 삼성경제연구소가 15~21일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CEO 264명 중 227명(86%)이 ‘유럽 재정위기 해소가 지연되면서 글로벌 경제가 저성장 추세를 지속할 것’이라고 답했다. 또 응답자의 33.5%는 ‘소비와 투자심리 악화’를, 28.2%는 ‘환율 변동성 확대로 인한 리스크 증대’가 우려된다고 각각 답했다. 성장세 회복을 예상한 CEO는 23명(8.7%)에 불과했다.

○정부, 성장률 목표 낮추기로

재정부는 28일 발표하는 하반기 경제운용계획에서 올해 성장률 전망치를 기존 3.7%에서 3%대 초반으로 낮추기로 했다. 또 지식경제부를 통해 업종·지역별로 팀을 꾸려 긴급 실물경제 동향 점검에 나서기로 했다. 지표와 실물의 괴리를 현장에서 직접 확인해보겠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자칫 자동차와 스마트폰 등 일부 주력 수출품의 신제품 출시 효과를 수출 회복 신호로 받아들이는 착시현상은 없는지 따져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또 이달 수출이 초반 호조세를 보인 것은 화물연대 파업을 앞두고 기업들이 조기 선적에 나서면서 물량이 초반에 몰린 결과일 수 있다는 해석도 있다.

정부는 성장률 하향 조정에도 불구하고 정책 기조는 현 상태를 유지한다는 방침이다. 대규모 재정 투입을 통한 경기 부양은 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글로벌 경기 둔화가 장기화될 가능성이 큰 만큼 지금은 재정 여력을 비축하면서 버틸 수 있는 만큼 최대한 체력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판단에서다.

재정부 고위 관계자는 “3%대 성장률을 예상하면서 비상대책 카드를 쓰기는 어렵다”며 “위기가 언제 끝날지 모르는 상황에서 섣불리 재정을 투입해 재정건전성을 악화시킬 수는 없다”고 말했다.

이심기/서정환 기자 sg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