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물경제 덮친 '유럽 쓰나미'…'15년 불패' 제조업이 흔들린다
유럽발(發) 재정·금융위기가 한국 실물경제로 곧장 밀고들어오는 징후가 곳곳에서 포착되고 있다. 전통적 위기 전파 경로인 ‘금융→실물’이 아니라 ‘실물→금융’을 통해 부동산 경기 침체와 1000조원에 육박하는 가계부채에 아슬아슬하게 얹혀 있는 경제 전반의 안정을 단숨에 무너뜨릴 수 있다는 경고도 나온다.

지난달 3대 시장(중국 미국 유럽)의 수출이 동시에 감소세로 돌아선 것은 실물경제가 그만큼 심각한 국면에 진입했다는 징후로 볼 수 있다. “아직 펀더멘털은 괜찮다”는 정부의 위무는 종합상사의 일선 수출창구에는 전혀 먹혀들지 않는 얘기다. 건설, 조선, 해운업이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에 직격탄을 맞은 데 이어 기계 철강 정유 석유화학 등은 ‘유럽 경기 침체→중국의 대유럽 수출 감소→한국의 대중국·유럽 수출 부진’으로 이어지는 경로를 타고 연쇄적 타격을 입고 있다.

삼성석유화학 태광산업 동국제강 등은 주력 시장인 중국의 수요 부진 등으로 이미 감산에 돌입했고 생존 여력이 바닥난 많은 중소업체들은 연쇄 부도 공포에 내몰리고 있다. 세계 1위 품목인 메모리반도체, 디스플레이 등도 선진국들의 경기 침체로 가격 폭락 여파에 시달리고 있다. 이에 따라 지난 1분기 우리나라의 상품교역조건지수(2005년=100 기준)는 75.0으로 사상 최저 수준으로 추락했다. 2005년 당시 수출대금으로 상품 100개를 수입할 수 있었다면 지난 1분기에는 75개만 겨우 수입할 수 있었다는 의미다.

이 같은 양상은 한국 수출의 견인차이자 경제의 버팀목인 제조업의 투자 위축과 가동률 저하로 나타나고 있다. 한국 제조업은 1997년 외환위기 이후 혹독한 구조조정과 과감한 글로벌 전략을 통해 ‘15년 불패신화’를 세계 시장에 써내려왔다.

하지만 “이번 위기만은 좀 다르다”는 게 수출전선을 지휘하는 주요 기업 최고경영자(CEO)들의 공통된 인식이다. 국내 굴지의 화학·소재기업 CEO A씨는 ‘상반기 경기 바닥론’에 코웃음을 치며 이렇게 말했다. “아직은 괜찮다고 하는 모양인데 다음달에 2분기 기업 실적이 발표되면 악소리가 나올 것입니다. 원래 바닥이란 것은 끝이 없는 법입니다.”

조일훈 경제부장 ji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