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3월 세계적인 투자가이자 기부가인 워런 버핏 벅셔 해서웨이 회장의 방한 소식에 대구가 들썩였다. 면담일정을 잡지 못한 많은 사람들이 버핏을 만나려고 인맥을 동원했지만 허사였다. 하지만 버핏은 서울에서 온 한 16세 소녀에게 20여분을 할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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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소녀는 행사를 마치고 나오는 버핏에게 무작정 다가가 “당신의 생일(8월30일)을 국제공헌자의 날로 지정하고, 매년 기부행사를 갖고 싶다”며 사업 제안서를 내밀었다. 수행원들은 화들짝 놀라 소녀의 접근을 막으려고 했지만 버핏은 의외로 그 자리에서 제안서에 서명했다. 버핏이 오기 전부터 대구시와 버핏의 숙소인 인터불고호텔에 수차례 공문을 넣어 자신을 알린 게 주효했다. 주눅들지 않은 소녀의 용기와 사회 공헌에 대한 의지를 버핏이 높게 산 것이다.

이 소녀가 바로 지난해 2월 한국기록원에 국내 최연소 최고경영자(CEO)로 등재된 이주홍 한국사회공헌재단(주) 대표다. 서울 이화여고 2학년생이면서 아직은 무보수지만 직원도 2명 있는 회사를 운영 중인 이 대표와 지난달 31일 서울 인사동의 사무실에서 만났다. 흰 티셔츠에 청바지 차림. 여느 풋풋한 여고생과 다를 바 없어 보였다. 하지만 “이 사업에 인생을 걸었다”고 당당하게 포부를 밝히는 대목에서 더 이상 17세 소녀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버핏도 반한 17세 '고딩'…"사업에 인생 걸었죠"
한국사회공헌재단은 이 대표의 할아버지 고(故) 이재창 씨가 출판사를 접고 새롭게 만든 회사가 시초가 됐다. 이씨는 유언으로 “큰 회사를 만들기보다 사회에 큰 공헌을 하는 기업을 만들라”고 회사를 이 대표에게 2009년 물려줬다. 이 대표는 “아버지와 10명의 손자 손녀를 제치고 회사를 물려받은 건 남다른 배포와 남을 생각하는 마음을 할아버지께서 눈여겨 봤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한국사회공헌재단은 국내 처음으로 학생들의 봉사와 사회공헌 정신을 평가할 수 있는 사회공헌자격증을 만들었다. 봉사활동을 점수화해 시험 자격을 부여하고, 시험을 통과하면 1~9급까지 있는 자격증을 성적에 따라 발급해준다. 회사의 수익은 시험 수수료나 자격증 발급비 등으로 충당할 예정이다.

또 오는 8월에는 ‘사회공헌신문’이라는 인터넷 신문을 창간할 계획이다. 기업과 정부기관을 주 독자로 삼는다. 대표 취임 이후 혼자 힘으로 서울시에 신문업을 등록했다. 중·고생 3만명을 모집해 자유 기고 형식으로 신문을 발행할 예정이다.

나이 어린 CEO의 어려움은 없을까. 이 대표는 “3년 전 할아버지 회사를 물려받았을 때가 14세였는데 전례가 없다는 이유로 대표이사 등록을 등기소에서 거절하는 등 우여곡절이 많았다”고 말했다. 지금도 중요한 자리마다 “‘학생은 나가달라’며 문전박대 당한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어리다는 의미는 남들보다 몇 번은 더 도전하고 실패하고 성공할 수 있다는 뜻”이라고 강조했다.

이 대표는 매일 오전 8시 등교해 오후 5시까지 학교 수업을 마치고 6시부터 회사 업무를 시작하는 강행군을 반복한다. 그는 “집에 가는 시간이 아까워 사무실에서 숙식을 해결하고 있다”고 말했다.

회사는 아직 적자다. 이 대표는 “물려받은 법인 자산 5000만원도 교재를 발간하고 시험 문제를 내는 데 모두 썼다”며 “계획대로 2014년까지 사회공헌자격증을 국가공인자격증으로 인증만 받는다면 매출은 점차 늘어날 것”이라고 자신했다.

김우섭 기자 dut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