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서초동에 사는 50대의 박모씨는 최근 월지급식 주가연계증권(ELS)과 즉시연금에 각각 5억원씩 투자했다. 세금 문제를 고려한 결정이었다.

ELS의 경우 파생상품의 특성상 위험도가 높고 증권사들이 제대로 된 설명을 하지 않는다는 비난이 있지만 박씨는 은행 프라이빗뱅커(PB)로부터 상품의 특성을 충분히 파악하고 판단했기 때문에 불완전 판매에 대한 부담은 없었다. 다만 이번에는 월지급식을 골랐다. 당장에 생활비를 타야겠다는 이유에서만은 아니다. 과거에 10억원을 ELS에 투자했다가 세금 문제로 낭패를 봤던 경험이 있어서였다.

그는 ELS에 돈을 넣으면서 6개월이나 늦어도 1년이면 환매를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환매 가능 시점이 3년으로 늦춰졌다. ELS는 특정 기간 동안 주가지수가 1500포인트 이하로 내려간다거나 삼성전자 주가가 얼마보다 떨어진다거나 등의 조건에 부합되면 돈을 찾을 수 있는 시기가 늦춰지는데 경기가 요동치면서 환매 시점이 계속 연기됐다.

불행 중 다행으로 3년 만에 제대로 된 수익을 내게 됐지만 문제는 세금이었다. 3년 동안의 수익이 한꺼번에 과세대상이 된 것이다. 그러다보니 매월 수익을 분산하는 효과가 있는 월지급식에 관심을 두게 됐다. 매월 생활비를 주는 즉시연금도 마찬가지 이유로 선택했다. 이자에 세금이 붙지 않고 금융소득종합과세 대상도 아니다. 10년만 갖고 있으면 당초 수익� 그대로 돈을 챙길 수 있다. 이율은 연 5%에 다소 못 미쳤지만 박씨는 저금리 시대를 고려할 때 수긍할 만한 숫자라고 생각했다.

강남부자들 사이에 ‘절세’가 초미의 관심사로 떠올랐다. 표면 수익률이 높다고 해도 세금 문제를 제대로 해결하지 못한 금융상품은 ‘찬밥’ 대접을 받고 있다. 여야 정치권 모두 입을 모아 금융소득종합과세를 포함해 세금을 올리겠다고 나서면서다. 새누리당은 총선을 앞두고 현행 4000만원 이상인 금융소득종합과세 대상을 내년 3000만원, 2015년까지 2000만원으로 인하하겠다는 공약을 내놨고 새누리당은 다수당이 됐다.

이미 고소득자에 대한 세금 인상은 시작됐다. 올해 이른바 ‘버핏세’가 도입되면서다. 상속세와 증여세의 최고 세율 50%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3억원 초과 고소득자에 대한 세금은 38%에 이르고 지방소득세를 더하면 41.8%가 된다. 상속세나 증여세보다 덜 무서워할 수 없다는 얘기다. 오히려 더 두려울 수도 있다. 상속세나 증여세는 과표구간이 넓어 1억원까지는 세율이 10% 정도지만 소득세는 1억원만 되더라도 최종세 율이 38.5%다. 은행에서 그토록 팔기 어려워하던 방카슈랑스 비과세 저축성 보험을 고객이 먼저 와서 찾을 정도가 됐다.

박국제 우리은행 투체어스 강남센터 PB는 “이머징마켓 채권형 펀드에 관심을 두는 고객도 있지만 핵심 키워드는 결국 세금이다”며 “최근 투자 트렌드는 고수익보다는 세금을 얼마나 아낄 수 있느냐로 모아지고 있다”고 전했다.

강남부자들의 세금에 대한 관심은 세무사를 통해서도 확실하게 확인할 수 있다. 모 시중은행 PB센터 세무사는 “과거에는 상속세나 증여세 같은 이야기가 아니면 특별히 관심을 보이지 않았지만 요즘은 다르다”며 “금융소득종합과세에 대해 설명을 하면 고객들의 눈빛이 달라진다”고 귀띔했다.

부동산도 마찬가지다. 그동안은 부동산을 상속이나 증여를 받을 때 대부분 공시가격으로 계산했다. 세금을 줄이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이제는 더 이상 공시가격을 고수할 필요가 없어졌다. 공시가로 상속이나 증여를 받으면 나중에 되팔 때 양도소득세를 내야 하는데 이때 ‘세금 폭탄’을 맞을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부동산에 대해서는 여전히 암울한 전망이 나오고 있다. 다주택자 중과세를 폐지한다거나 보유세를 떨어뜨린다고 해서 될 일이 아니라고 보는 것이다. 심지어 대출규제를 풀어도 당장에는 효과가 나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김규정 부동산114 본부장은 “부동산 규제 완화가 된다고 해도 심리적인 영향을 주는 데 그칠 것 같다”며 “경기 회복을 전제하지 않으면 상승세를 예단 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박종서 기자 cosm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