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들이 올 4월 발효되는 개정 상법에 맞춰 이번 정기주총에 이사의 책임을 축소하는 정관 개정안을 상정했으나, 국민연금의 반대에 막혀 주총 직전 철회하는 등 혼선을 빚고 있다.

풍산홀딩스와 풍산은 16일 열리는 정기주총에 안건으로 상정했던 ‘이사의 책임 감경’과 관련한 정관 변경안을 자진 철회한다고 15일 공시했다. 이에 앞서 14일에는 대림산업이 같은 내용의 정관 개정안을 취소했다. 풍산 관계자는 “대림산업이 포기한 것을 보고 정관 개정 내용을 빼기로 했다”며 “국민연금이 모든 기업에 반대 방침을 밝힌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풍산 등의 정관 변경안은 개정 상법 제400조 2항에 근거하고 있다. ‘고의 또는 중대 과실로 회사에 손해를 발생시킨 경우를 제외하고는 정관에서 정하는 바에 따라 회사에 대한 이사의 책임을 최근 1년간 이사 보수액의 6배(사외이사는 3배) 이내로 제한’하는 것이 골자다. 기존 상법에는 이사 책임의 감경 조항이 없어 무한 책임을 지우도록 돼 있었다.

국회와 정부는 지난해 입법 과정에서 “유능한 경영진을 쉽게 영입해 보다 적극적으로 경영할 수 있도록 이사의 회사에 대한 책임을 완화할 필요가 있다”고 밝힌 바 있다. 따라서 국민연금의 반대는 이 같은 법 개정 취지에 역행하는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지난해 법무부 상법개정특별위원회 위원으로 참여했던 최준선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과실 우려 때문에 경영자들이 소극적으로 경영에 임하는 것을 막고 보다 과감한 경영전략을 세울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신설된 조항이 국민연금의 반대로 유명무실해졌다”고 지적했다.
대림산업과 풍산에 이어 이사 책임 축소 정관 변경안을 철회하는 기업들이 잇따를 것이란 관측이 나오고 있다. H사 관계자는 “상법 개정안 취지에 맞춰 정관을 개정해야 할지, 주요 주주인 국민연금의 입장에 따라야 할지 난감하다”고 말했다.

국민연금 측은 이와 관련, “상법 개정에도 불구하고 주주 이익을 훼손할 수 있기 때문에 반대 입장을 정했다”며 “모든 회사의 정관 변경에 반대하겠다는 것은 아니다”고 밝혔다.

김수언 기자 soo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