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경제에 부담 주던 정치, 이젠 기업 잘되게 챙겨야
“한국은 위기상황에 빠져들고 있다. 세계 경제의 위기 탓만은 아니다. 한국정치의 위기가 경제위기를 증폭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류동길 숭실대 명예교수가 진단한 한국 사회의 현주소다. 그리스를 비롯한 유럽 여러 나라가 복지 포퓰리즘에 빠져 막대한 재정적자를 보이면서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 류 교수는 이에 대해 “돈으로 표를 사는 정치인과 그런 정치인을 계속 뽑아준 유권자의 합작품”이라며 “정치인들이 분에 넘치는 복지를 들고 나오면 재앙이 온다는 걸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는데, 그런 나라를 뒤쫓아 가려는 게 오늘의 한국”이라고 말한다.

《경제는 정치인이 잠자는 밤에 성장한다》(숭실대학교출판국, 1만4000원)는 류 교수가 2003년 8월 이후 여러 매체에 쓴 칼럼을 모은 책이다. 책 제목은 정치가 경제에 걸림돌이 된다는 걸 해학적으로 표현한다. 정치가 경제에 부담주는 일을 하지 말고 경제를 챙겨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상당수 칼럼은 쓰인 지 꽤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시사적이다. 선거 때마다 선심성 공약을 남발하고, 포퓰리즘 정책을 쏟아내는 정치인들의 행태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류 교수는 “앞뒤 따질 겨를 없이 공약을 마구 쏟아내고 돈이 얼마 들어갈지 계산은 아예 없는 게 선거판”이라며 “무상이든 반값이든 표만 얻을 수 있다면 어떤 주장도 마다하지 않는 것은 나라의 미래를 앗아가는 기만이나 다름없다”고 지적한다. 인기정책, 선심정책은 달콤하지만 그 때문에 경제는 망가진다는 것이다.

“총선과 대선에서 또 어떤 공약이 쏟아져 나올 것인가를 생각해보라. 과거의 수도 이전, 신공항 같은 공약이 나오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 더욱이 쏟아질 복지공약을 무슨 수로 막을 것인가. 국민이 무슨 죄가 있다고 정치인의 표계산 놀음에 허리가 휘어지며 그 비용을 물어야 하는가.”

류 교수는 “복지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좋지만 경제성장과 재정건전성 등 복지 확대를 가능케 할 바탕을 늘려가는 일을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당장 퍼주기 식의 ‘작은 복지’에 매달리기보다는 일자리를 창출해 경제 성장과 복지가 함께 가도록 정책을 펴야 한다고 조언한다.

류 교수는 “경제를 살리려면 기업 규제를 없애고 기업의 기(氣)부터 살려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는 “우리 사회가 믿을 건 정치인이 아니라 기업과 기업인”이라며 “기업 발목을 잡으며 경제를 걱정하는 염치없는 일은 하지 말아야 한다”고 경고한다.

중소기업 지원 정책에도 상당 부분을 할애하고 있다. 류 교수는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진정한 상생 협력은 잘못된 거래관행을 바로잡는데서 출발한다”며 “가업승계를 원활히 할 수 있도록 해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장수 기업을 키워가야 한다”고 말한다.

책은 정치와 경제 외에도 세종시 문제, 불법·탈법에 관한 여러 문제를 다루고 있다. 류 교수가 삶과 행복, 돈과 성공에 대한 생각과 느낌을 적어나간 수상록에 가까운 글들도 실려 있다.

양준영 기자 tetrius@hankyung.com